◎자금운용 단기성과에만 급급 화 불러/무리한 임원늘리기·위기대책 불재도「기아사태」는 국내 기업들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10대그룹도 좌초될 수 있으며 세계 10대메이커를 바라보는 우량기업도 도산할 수 있고 노사를 중심으로한 인사관리, 기업환경의 변화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되새겨야할 것은 「총체적경영능력」이다.
기아사태의 본질에 잠겨있는 ▲미숙한 자금운영 ▲임원구성의 문제점 ▲위기상황에 대응한 시니리오경영의 부재는 비슷한 처지의 국내 기업들에 뼈져린 교훈이 될 것이다.
◇자금운용의 미숙=기아는 지난해부터 원가와 경비를 30% 줄이고 생산성을 30% 향상하는 「PI-333운동」을 추진해왔다. 복사용지는 이면지를 사용하고 여의도 본사 4개의 직원 엘리베이터도 점심과 퇴근시간 이외에는 2개만 가동할 정도로 지독한 절감을 실시했다.
이 때 단기성과에 매달린 경영진들이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는게 그룹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 운동을 펼때 투금회사 등 제2금융권의 저금리 자금을 끌어다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은 은행등의 장기부채를 갚았다. 기아는 이를 통한 금리절감 등으로 지난해 3천억원의 경비를 줄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초 한보사태 이후 투금회사들이 부실징후 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자금회수에 들어가면서 기아는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임원구성의 문제점=기아는 지난해 2백20명에 달하는 임원을 올들어 2백80명으로 늘렸다. 전체그룹 임직원은 5만3천명에서 2천명 늘어났다. 임원증가율이 6배가 넘는다.
경기침체에 따라 현대가 8백49명이었던 임원을 8백47명으로 줄이고 쌍룡이 3백48명에서 3백26명으로, 한진이 2백69명에서 2백64명으로 줄인 것과 대조적이다. 기아 관계자는 『정에 약한 김회장이 능력없는 임원들을 퇴직시키는 대신 계열사 전보나 고문에 앉히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한다.
전체의 70%가 넘는 공대출신 임원들의 뒤떨어진 경영감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대 공대 출신인 김선홍회장을 비롯 김영귀 자동차사장(연세대 화공과), 조래승 아시아자동차 고문(서울대 기계공학), 김광순 기아자판 대표이사 부사장(한양대 기계공학) 등 최고경영자의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이다.
이런 구조는 전체 임원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 출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재계 전체의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기아의 경우는 전체의 70%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쟁업체의 한 관계자는 『기아가 자동차는 잘 만드는데 판매가 취약한 것은 이런 임원진의 구도와 관계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반적인 경영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개발, 생산위주로 흘러 상대적으로 판매가 위축됐다는 것. 기아가 판매회사를 분리독립시킨 것은 이런 문제점을 인정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시나리오 경영의 부재=기아는 지난 15일 부도유예업체로 지정되자 『음모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 임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경영정상화를 통한 살아남기보다 『기아를 망하게 만든 흑막을 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위기가 남의 탓이라는 시각이다.
이런 상황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경영진의 단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즉 경영에서 위기상황을 상정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시나리오경영 등 체계적인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다는 것. 이런 자세는 사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밤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서 모기업인 기아자동차는 무풍지대였다. 자구노력이 부동산 매각등에 집중된 것은 위기돌파를 위한 시나리오의 부재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기아 경영진은 특수강과 기산은 매각해야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있지만 아시아자동차에는 아직 상당한 미련을 갖고 있어 아시아와 기산을 패키지로 매각하려는 채권단의 생각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를 마련했더라면 기아는 지금과 같은 총체적 난국에 빠지지는 않았다는게 기아 내외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정승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