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마늘문제 균형 잃지 말자

정부가 중국산 마늘문제의 늪에 빠져있다. 이 때문에 경제수석과 농림부 차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사전에 알았느냐 몰랐느냐 등의 논란이 증폭되면서 그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언론ㆍ정치권ㆍ농민단체 등 각계에서 정부의 의사 결정과정과 통상 대응능력을 놓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고 있다. 마늘 농가의 절박성과 이에 따른 분노도 충분히 이해되고 이를 진정시킬 수 있는 조치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흥분만 하지 말고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2년 전 마늘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하고 이어서 중국으로부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한 무자비한 수입규제를 당했을 때 우리 언론의 논지는 어땠는가. '소탐대실의 우(愚)' '한치 앞도 못 내다본 결정' '통상마찰 자초'.이런 것들이었다. 그 당시 언론의 이러한 입장들이 마늘 농가의 어려움을 몰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중국시장은 우리의 명줄이었고 중국과의 통상마찰은 최대한 피해나가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 언론은 미국에서 수입규제를 가했을 때에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중국에서의 크고 작은 수입규제조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비판을 자제해왔다. 중국은 당시 우리의 중국에 대한 최대 수출 품목인 폴리에틸렌과 최대 유망품목인 휴대폰에 대해 수입 금지를 하는 초강수를 발동했다. 우리는 몇가지 농산품으로 중국을 달래려 했지만 중국의 입장은 '마늘문제는 마늘로 풀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 당시 한 정부인사는 중국과의 싸움에서 중국은 칼자루를 쥔 반면 우리는 칼날을 쥐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흑자를 누리는 우리로서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국익에 따른 결정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데 대체적인 공감대를 얻었던 것이다. 수출업계도 중국산 마늘문제 해결에 동참하기 위해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마늘 수입자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합심해 한 고비를 넘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분풀이나 책임추궁은 좀 미뤄두고 다시 합심해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안을 찾는 데 진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고려사항은 우리 정부의 국제적 신뢰문제다. 본문에 있든 부속서에 있든 합의사항은 국가간의 엄연한 약속 사항이다. 월드컵 4강 이후 세계 경제 4강 목표란 말을 공공연히 쓰고 있는 마당에서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중국에 대한 신뢰추락 뿐이 아니고 세계적인 신뢰 추락이다. 중국과 이 문제를 갖고 협의는 해볼 수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상당한 위신추락을 감수해야 될 것이다. 이미 중국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엄중한 관심'을 표명하는 등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외교적인 문제를 떠나서라도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우리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출해 현지기반을 마련하려는 시장이다. 수출도 매년 20% 이상씩 신장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70∼80년대에는 일본시장에 의존했고 90년대에는 미국시장에 의존했다면 2000년대에는 중국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일 마늘 문제가 통상 마찰로 이어지면 그 피해는 당장 우리 수출기업과 현지진출기업에게 전가된다. 다음은 농민 대책이다. 지난번과 같이 수출업계가 돈을 거둬서 유통시킬 수도 없는 마늘을 사서 창고에 쌓아놓는 임시변통 식의 방법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농민소득 보존이나 전업대책 등 재정부담을 수반한 확실한 구조조정 대책을 마련해서 농민을 설득해야 한다. 경제계도 IMF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했듯이 농촌 살리기에 동참해 힘을 모아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의 정책 결정은 전적으로 행정부에 맡겨야 된다. 정치권이 나서서 표를 의식하고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해서는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이 문제의 경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이를 꼬이게 했던 그 관련 부처들이다. 언론도 이제는 책임추궁보다는 보다 균형적인 시각에서 여론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마늘은 마늘로 풀고 통상문제는 세계 통상 규범에 따라 풀어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월드컵에서의 국제적 신뢰를 새로운 경제도약의 발판으로 만들 수 있느냐 또는 다시 국내문제로 발목잡혀 모처럼의 자신감을 환상으로 끝내버리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이기 때문이다. /조환익<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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