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여성과 기업

지난 15년간 나는 이지디지털(EZ Digital)이라는 사명으로 산업용 전자통신계측기를 생산하며 나름대로 세계 선두기업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야무진` 명제를 갖고 뛰어왔다. 이제서야 디지털 시대로 들어서면서 상품에 대한 경쟁력이 생겼고 70~80% 수입에 의존했던 당시보다 대기업 등 일반 산업현장에서의 활용도가 커지고 있다. 특히 실험기자재는 국산부터 사용하며 학생들의 손에 익어야 한다는 설득과 함께 교육현장에서의 이용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제 세계 글로벌 메이커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잠시 뒤돌아보면 “만약 내가 남성이었다면 오늘의 이 지점에 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라는 의문이 종종 생긴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부분이 많지 않았나,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한 점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스스로 여성을 주장한 바도 없고 여성인 점을 전략으로 내세우지도 않았지만 남자였다면 형ㆍ아우ㆍ선배하며 부담 없이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제 후배 여성기업인에게는 그렇게 `불필요한` 문화를 남기고 싶지 않다. 많은 여성기업인 중에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에는 지식 서비스 업종이 21세기 디지털 산업의 환경에 힘입어 급성장하는데다 여성 친화적인 비즈니스모델이 많이 탄생하고 있는 만큼 여성기업인들에게 기회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고급 학력을 소유한 여성 또한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으니 여성기업에 대한 지원은 국가로서도 절명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비춰볼 때 한국여성벤처협회의 탄생 자체는 시대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여성기업 문화가 짧고 육아ㆍ노인ㆍ가사 등 여러 산적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 또한 우리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변 환경이 짐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평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선배들이 슬기롭게 대처해온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배워야 한다. 참여정부 출범과 맞물려 지금은 우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대외 환경에 의존해온 한국은 이라크전 발발 가능성, 북핵 문제 등 여러 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지만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나라의 경우 여성인력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한국여성벤처협회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산업에 몸담고 있는 여성기업인이 많다는 사실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을 모방하는 산업 형태에서 벗어나 세계 초일류를 자랑하는 인터넷 환경과 기술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이제는 우리가 앞서나갈 수 있고, 특히 여성기업인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 모든 사람들이 기술의 급속한 변화를 절감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벤처 기업은 한국의 `성장 엔진`이라는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문화와 체질도 많이 바꿔놓았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한국의 벤처 기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할 정도로 발전한 한편, 일부 비(非)도덕한 기업인들 때문에 벌어지는 벤처 금융 스캔들로 인해 벤처의 이미지가 얼룩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압축성장 뒤에는 그러한 크고 작은 비리가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이는 시스템적인 문제인 만큼 지금의 변화에 맞춰 정도를 걸으면 될 것이다. 구심점을 잃지 않는 정책 위에 기업들 또한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여성의 개인역량은 매우 뛰어나지만 활용도에 있어서는 무척 낮은 편이다. 그렇지만 여성장관 4명을 배출하며 평등한 사회를 솔선수범해 실현하려는 `참여정부`에 거는 여성기업인들의 기대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성인력들이 늘어나며 사회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사실을 불편하게 느끼는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아쉬운 점이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여성인력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여성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정책이 수행되기를 기대해본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을 연임을 하게 되면서 본인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지만 열심히 뛰어서 세계적인 한국의 여성스타기업이 나온다면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이제는 모방보다는 창조력으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을 기울이기를 여성기업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이영남(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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