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컴네트 삼성에 매각/이찬진 신화 깨지나

◎신제품 개발보다 브랜드에만 의존/시장대응 태만 고급기술진 이탈/해적판 기승 겹쳐한국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인 한글과컴퓨터(한컴·대표 이찬진)가 흔들린다. 최근 인터넷 컨텐트 사업을 위한 자회사인 한컴네트를 삼성그룹에 매각키로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컴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이찬진사장은 지난 9월 신제품 「한컴오피스 97」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끊임없이 나도는 「한컴 매각설」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발끈하면서 한편으로 자금 확보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당시 이사장은 『회사 유지는 큰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매각설은 사실 무근이다. 단지 급변하는 정보통신시장에 발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투자자금을 마련하기가 쉽지않은 형편이다』고 말했다. 신규 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에 투자를 신청한 것이 매각설로 와전됐다는 게 이사장의 해명이었다. 그러나 매각설의 불씨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한컴이 한컴네트를 매각키로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사장의 해명은 신뢰를 잃게 됐다.<본지 10월14일자 13면 참조> 한컴은 이번 협상과정에서 삼성에 대해 한컴네트 뿐아니라 한컴 전체를 한꺼번에 인수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한컴네트만 인수하여 완전 매각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매각설 자체가 「사실 무근」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준다. 문제는 단순히 이사장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매각설의 사실여부를 떠나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이 흔들리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범국가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오히려 벤처기업은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 이사장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진단했다. 사실이긴 하지만 벤처기업 경영자로서 너무나 안이한 자세다. 사업 환경 탓만으로 경영자에게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벤처정신의 희석」을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술개발은 뒷전이었다는 지적이다. 한컴은 초창기에「한컴 신화」를 창조했던 우수한 기술진들을 여럿 잃었다. 벤처정신으로 무장한 신화의 주역들이 하나 둘 떠나버린 한컴은 매너리즘에 빠져 기술력을 앞세운 히트상품을 내지 못했고 그 결과 매출 부진에 빠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벤처정신이 엷어진 건 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컴은 정확한 시장예측 능력과 시장을 선도하는 우수한 제품으로 승부를 걸기보다 「이찬진」이라는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단기적인 상술을 애용했다. 「이찬진의 멀티미디어 교실」 등 「이찬진」 브랜드가 대표적인 예다. 한컴의 위기는 「분에 넘치는 돈놀이」로 인한 대기업의 부도와는 다르다. 한컴의 위기는 「자금의 위기」가 아니라 「벤처 정신의 위기」라는 점에서 최근 벤처 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이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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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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