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사상누각 IT강국 코리아


"중국 인터넷주소(IP)가 아니라 농협 내부 사설 IP로 확인됐습니다."

정부가 하루 만에 공식 발표를 뒤집었다. 20일 농협 전산망을 마비시킨 악성코드의 최종 루트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바뀐 것이다. 하루 사이에 대단한 조사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인터넷의 기본인 IP를 헷갈렸다. IP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전화번호로 공인과 사설 두 가지만 있을 뿐이다. 합동대응팀은 국제 규약을 따르지 않은 사설 IP가 혼선을 일으켰다고 변명하지만 사설 IP를 확인하지 않은 실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해커들이 여러 나라를 경유해 IP 세탁을 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중국 IP를 서둘러 발표했고 가장 신중해야 할 청와대마저 뚜렷한 근거 없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섣불리 넘겨짚었다. 실수가 확인된 뒤에는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 질책성 언급만 나왔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는 "발표에 신중해야 한다"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3ㆍ20 사이버테러 조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설픈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의 맨 얼굴과 컨트롤타워 없는 사이버 강국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의 어설픈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7ㆍ7 분산서비스거브(DDosㆍ디도스) 공격 등 해커들의 수준은 날로 고도화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처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사이버 전쟁의 최전방을 지켜야 할 보안 전문가 양성 수준도 형편없다. 정부가 운영하던 보안 전문가 양성소는 6개에서 1개로 줄었고 정부의 보안 지출 예산도 감소 추세다. 세계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인재들은 많지만 처우가 형편 없어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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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군의 사이버 인력은 400명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2009년 사이버사령부를 신설해 4성 장군이 사령관을 맡고 있다. 북한의 해커 부대에는 1,000만명의 최정예 해커를 포함해 약 3,000만명의 요원이 활동 중이다.

사이버테러는 현실이다. 항공ㆍ해운ㆍ식수 등 기간산업을 노린 사이버테러도 시간문제다. 정부 조사단의 실수를 질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이버 안보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

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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