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섬망’ 아세요

60세 김 모씨의 사례 평소 특별한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 왔던 김 모(60세ㆍ남)씨는 얼마 전 운동을 하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대퇴부 골절상을 입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 난 후 이틀째부터 김 씨는 자신이 수술 받은 사실을 모르는 듯 주사 줄을 잡아 빼고 침대에서 자꾸 일어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환자들을 고향 사람으로 착각하고, 어떨 때는 논에 모내러 가야 한다고 하는 등 혼돈과 흥분증상을 보였다. 간병을 하던 며느리가 못 움직이게 말리면 평소 성격과는 달리 화를 냈고, 밤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횡설수설 하다가 새벽이 되면 잠들어 낮 12시가 다 되어야 겨우 일어나곤 했다. 밤에 집 밖으로 자꾸 나가려고 하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다 보니 주변 환자들도 잠을 잘 수 없어 여간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그에게 치매가 온 것이 아닌가 하며 불안에 했으나 전문의가 일단 `섬망`에 대한 치료를 하자고 권유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혼란현상에 대한 적절한 약물치료를 시행한 결과 놀랍게도 1주일 후부터는 제때 잠을 자고 횡설수설하는 증상도 많이 줄어들었으며 사람을 잘못 알아보는 일도 없어졌다. 안정을 찾은 김 씨는 치매여부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았으나 치매증세는 없는 것으로 나타나 퇴원하게 되었다. 을지병원 주은정(신경정신과ㆍjej1303@eulji.or.kr) 교수는 “이 같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신체적인 통증이 심하게 경험했거나 수술ㆍ입원 등으로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지고 환경이 급변할 경우 의식장애와 혼란현상을 보이는 경우를 `섬망`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섬망은 증상이 치매와 유사해 전문의조차 오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급성으로 발생하면서 짧은 경과를 보이고, 하루 중 증상의 변동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치매와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의학계에 따르면 섬망은 치매와 같이 올 수도 있고 단독으로 올 수도 있으므로 섬망이 있다고 치매가 온 것처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치매환자의 약 40%가 증세를 동반하며, 섬망환자의 약 25% 정도가 치매를 동반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두 질환은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섬망은 젊은 사람에게 오기도 하지만 75세 이상 입원한 노인환자의 약30%가 섬망 증세를 보인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주로 노인들에게 흔하게 온다. 중요한 원인은 환자에게 닥친 갑작스런 환경 및 신체적인 변화다. 다시 말해 신체적인 감염ㆍ고열ㆍ전해질 이상ㆍ뇌졸중과 같은 중추신경계 질병이나, 뇌의 외상ㆍ저산소증ㆍ내분비계 이상 등 신체적 질환과 알코올이나 약물의 금단증상으로 발생되기도 한다. 일부의 경우에는 입원ㆍ수술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진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단순한 섬망일 경우 조기발견과 적극적인 치료로 빨리 호전될 수 있지만 80~90대 이상이라면 17∼75% 정도가 섬망이 나타난 후 사망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인환자 중 상당수가 사망 전 수일에 걸쳐 섬망상태가 발생한다는 보고도 많다. 그만큼 고령 층에서 나타나는 섬망은 사망과 직결되는 위험한 증상이자 질환이다. 수술을 받았거나 통증이 심할 경우,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는 섬망 발생확률이 더 높다. 치매가 동반되지 않은 섬망이라면 유발요인을 제거하면 1∼2주 내에 회복되지만 치매가 동반됐거나 뇌의 기질적 이상을 동반한 섬망이라면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되지 않는 못할 가능성도 높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의식의 혼탁, 하루 중에도 의식의 혼란정도의 변화가 심하다. 또 환각이나 환시, 시간ㆍ장소 및 사람에 대한 식별력 장애, 수면각성주기의 장애, 주의 집중력의 장애, 조리에 맞지 않는 언어, 불안, 초조, 흥분 등이 나타난다. 섬망으로 판단되면 치매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적극적인 약물치료를 실시하며 일상생활의 리듬과 수면주기 조절하고 환경을 적절히 조절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병실에서 주변 환경을 잘 정리정돈하고 집에서 쓰던 낯익은 물건을 한 두 가지를 환자 주변에 가져다 두어 정서적인 안정을 주며 낮 동안에는 병실을 환하게 유지하여 주고 달력과 시계를 눈에 잘 뜨이게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 여러 가족이 웅성거리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방문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가능하면 익숙한 가족 한 두 사람이 간병을 고정적으로 맡아 환자에게 일관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정상적으로는 저절로 파악될 수 있는 주변의 환경들이 섬망 환자에게는 파악되지 않고 불안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여기가 어디고, 현재 어떤 상황이 진행 중인지 환자에게 간단 명료하게 여러 번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환자를 야단치거나 환자 앞에서 치매 운운하며 가족들이 걱정스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반드시 금해야 한다.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하여 낮에라도 자게 하는 것은 섬망을 더욱 오래 지속시킬 수 있으므로 가능한 낮잠을 자지 못하게 하여 낮과 밤의 일상생활리듬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섬망의 진단을 위해서는 정확한 병력과 더불어 신체적인 상태와 뇌 기능을 보기 위한 검사가 필요하다. 뇌파검사ㆍMRI 등의 뇌영상 등이 필요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뇌척수액검사를 하기도 한다. 주은정 교수는 “노인이 갑자기 입원 수술 지병의 악화 등의 환경ㆍ신체변화를 겪게 될 경우에는 섬망의 발생 가능성을 미리 고려하고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체적인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통증관리를 잘해주어야 하며 심리적인 안정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박상영기자 sa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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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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