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미노동운동 왜 쇠퇴하나] 장기호황따라 새 일자리 급증

80년대 중반 미국은 10%를 넘는 높은 실업율에 허덕였고, 일본은 완전 고용에 가까운 2.5%의 저실업율을 구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미국과 일본의 실업율 곡선은 4.4%에서 만난 후 역전됐다.지난 10년 동안 무엇이 미국과 일본의 실업율을 역전시켰을까. 대답은 바로 노동탄력성이 미국에 정착됐고, 노동조합이 쇠퇴했다는 점이다. 8년째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의 비밀을 이해하려면 80년대 노동운동의 변화야말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미국 노동조합은 오랜 역사 속에서 기업주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노동조합의 세력이 강성해 임금 상승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넘어섰고, 자동차·철강등 미국 주력산업의 노조는 미국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지만 노조의 강성은 고임금과 근로자의 나태를 낳았고, 그 결과 미국 제품은 일본과 독일 제품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다. 실업율이 높아지는데도, 노조는 임금 투쟁으로 1년 가까이 회사 문을 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당시 영국 출신의 폴 케네디 교수는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미국 경제가 효율성 저하로 쇠퇴할 수 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노조는 케네디 교수가 지적한 효율성 저하를 초래한 하나의 요인이었던 것이다. 국민들도 더이상 노조의 무모한 투쟁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로 변했고, 마침내 레이건 대통령이 총대를 멨다. 81년 항공관제사 파업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한을 정해놓고 복귀 명령에 불복한 노조원 1만2,000명을 해고하겠다고 통고했다. 이때 해고된 관제사들이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하게 정부가 통제했다. 레이건의 단호한 조치는 엄청난 반발과 고통을 수반했지만, 정리해고제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노조도 더이상 대량해고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해고 폭을 줄이기 위해 임금 삭감을 자청하기에 이르렀다.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는 80년대에 수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 연봉 1달러를 받겠다고 자청한 아이아코카 회장이 맨먼저 노조를 만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노조에게 감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노조는 봉급을 깎을테니 일자리를 보전하자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아이아코카 회장은 감원과 임금 삭감을 동시에 단행했다. 크라이슬러가 90년대에 회생한 것은 근로자의 희생과 타협의 산물이다. 80년대 후반 들어 미국 기업들은 대대적인 다운사이징(인원 감축)을 단행했다. AT&T 12만3,000명(30%) IBM 2만2,000명(35%) GM 9만9,000명(29%) 보잉 6만1,000명(37%) 시어스-로벅 5만명(15%) 등이다. 노조의 패배는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가져다 주었다. 기업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낡은 산업에서 수시로 인력을 방출하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그들을 수용했다. 근로자들도 정리해고에 대한 불감증이 생겼고, 해고후 곧바로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고 움직였다. 지난해 미국 기업에서 50만명이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었으나, 200만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 미국 경제가 80년대의 침체를 극복하는 과정은 노조의 힘이 약화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기업주들은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지 않으면 더많은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노조를 하는 것보다 회사에 협조하는 것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확산됐다. 전국노동조직인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별회의)는 지난 55년 1,300만명의 노조원을 확보, 전체 근로자중 35%의 조직율을 자랑했었다. 70년대까지 25%를 유지하던 노조 조직율은 지난해 14%까지 떨어져 요즘은 미국 노조는 조직율 만회에 급급하다. 레이건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대처 수상은 탄광 노조와의 싸움에 이겨 영국병 하나를 치유, 영국 재건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종신고용제는 10년전 미국 기업들이 비판 받았던 효율성 저하에 초래하며, 경제 전반에 실업자를 늘리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또 앵글로색슨족의 길을 따르지 않겠다며 노동시장 탈력성의 부작용을 두려워했던 프랑스와 독일은 아직도 10%대의 고실업율에 허덕이고 있다. /뉴욕=김인영 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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