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 포커스] 뉴욕증시 거품붕괴 교훈

96년 12월 5일 저녁,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한 저녁 모임에 참석,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그가 뉴욕증시 거품론을 제기하자, 다음날 도쿄 증시를 시작으로, 홍콩ㆍ유럽을 거쳐 뉴욕 증시가 폭락했었다. 그날 유일하게 상승한 증권시장이 바로 한국 증시였다. 외환위기 직전의 한국 증시는 국제시장에서 섬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은 당시 외국은행으로부터 차관 도입은 허용했지만, 증권시장의 문호는 닫아놓고 있었다. 과천의 경제관료들은 직접금융시장을 묶어놓으면 외국자본의 지배를 당하지 않을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지만, 은행의 단기차관이 얼마인지 통계조차 갖고 있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증시는 외국에 문을 열었고,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외국인 지분율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96년 13%에서 지난해 36.6%로 급상승했다. 그린스펀의 경고가 나왔을 때 다우존스 지수는 6,400 포인트였고, S&P 500 지수의 PER(주가수익률)은 대공황 직전인 1929년 10월 수준이었다. 그러나 뉴욕증시는 그린스펀의 경고에 아랑곳 않고 그후 5년 동안 급상승했다. 이제 뉴욕증시는 그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 있다. 미국 기업들이 연이은 회계조작으로 심각한 '신용의 위기'에 빠져 있고, 테러 위협이 상존한데다, 기업 수익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나스닥 지수는 지난해 테러 직후의 저점 이하로 떨어져 5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관론자들은 다우존스 지수가 그린스펀의 경고시점인 6,000 포인트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테러후 한국에는 많은 외국인 자금이 증시에 유입돼, 이머징 마켓 중에서 괄목할만한 상승률을 기록했다. 월가의 많은 펀드들이 수익률이 낮은 뉴욕증시보다는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한국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 투자자들이 기업(증권)을 믿지 않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월가 펀드로의 자금 유입이 줄어들고 있다. 월가에 여유자금이 풍부할 때 그 일부가 수익률이 높은 한국을 찾았는데, 자금이 말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투자할 여유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정부 관료들은 5년전처럼 기초여건이 좋다고만 주장하는데, 현재 미국의 경제위기가 강건너 불구경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싶다. 뉴욕=김인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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