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가계 빚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근검절약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사람들은 개미와 베짱이에 관한 우화를 들으며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는 근검절약을 실천, 매해 30%가 넘는 높은 저축율을 보여 줬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수출함으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다. 돌이켜 보면 개발경제 시대에는 우리 경제 시스템 자체가 저축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임금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대신 10%가 넘는 높은 금리로 저축을 유도하는 한편 저임에서 오는 손실을 금리로 보전해 줌으로서 저축과 투자와 성장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절묘한 선순환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노사분규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를 살린다고 금리를 낮추더니 드디어 저축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에 균열이 생기는 모양이다. 2?분기의 가계저축이 가계대출에 못 미쳐 적자를 보였다는 보도다. 전에는 가계가 저축한 돈을 기업이 빌려다 생산적인 투자에 썼는데 이제는 가계가 빚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고임금 시대가 되니 금융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고 결국 저축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얘기가 될 듯 하다. 85년에도 가계가 적자를 보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생계비를 충당하기 위한 빚이었지 이번처럼 저금리를 배경으로 한 소비나 투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 나타난 현상도 이를 구조적 변화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같은 저금리로 인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가 겪는 증상이 별것 아니라고 넘길 수도 없을 듯 하다. 외신을 보면 영국의 경우 60년대 이래의 낮은 금리로 인해 가계 빚이 유럽 최대인 8천억 파운드(1600조원)에 이르고 미국도 금리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가계 빚이 가처분소득을 20%나 앞지르고 있다 한다. 두 나라에서 모두 부동산 값이 뛰고 있다는 점도 우리와 유사하다. 외채 때문에 환란을 겪고 지금도 빚 투성이인 우리가 미국이나 영국도 겪는 일이라며 늘어나는 가계 빚을 보고만 있어도 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신성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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