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한 M&A로 침체수렁 벗는다미국과 함께 세계 IT산업의 또 다른 중심축으로 꼽히는 유럽, 특히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요즘 세계경제 침체 여파에 따른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
주식시장은 지난해부터 급락세를 지속하면서 스웨덴의 경우 올들어 연초 대비 40%나 폭락하는 등 대부분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한 창업 감소와 실업자 증가 등 다방면에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IT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 위주의 기업체들에게 성장의 동력을 제공해온 벤처캐피털사들 역시 더불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규 투자가 위축되고 있으며 펀드조성에도 커다란 차질을 빚고 있다.
유럽벤처캐피털협회(EVCA)에 따르면 새로운 펀드조성에는 무엇보다 경영위기 등의 여파로 개인기업들의 이탈이 많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한때 성행했던 엔젤도 각국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설명이다.
야비에르 에차리 EVCA 사무총장은 "근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침체로 프라이빗 에쿼티(일명 장외시장) 시장도 크게 경색되고 있어 유럽 벤처캐피털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러나 각국 벤처캐피털사들은 나름대로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정책 등을 통해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위축된 유럽 벤처캐피털 시장
EVCA가 집계한 올 상반기 펀드조성 내역은 지난 1ㆍ4분기 53억9,100만유로(6조5,243억원)에 달했던 것이 2ㆍ4분기 들어서는 19억9,300여만유로(2조4,620억원)로 대폭 줄었다.
그러나 투자업체수는 1ㆍ4분기 1,236개사에서 2ㆍ4분기에는 1,260개사로 늘었는데 이는 기업체에 대한 단순 투자보다는 기업인수(Buyout)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유럽 벤처캐피털사들이 어려움에 처한 업체들을 사들인 뒤 경영을 정상화시켜 다시 매각하려는 일종의 기업구조조정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 IT강국의 1위와 4위(월드타임스 인포메이션소사이어티 지수 2000 기준)에 올라있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의 IT단지이자 세계 무선인터넷의 산실로 평가 받는 스웨덴의 시스타(Kista) 사이언스파크. 이 곳에는 700여개의 회사에 2만8,000여명의 직원과 스웨덴왕립공과대학 등의 대학생 3,300여명이 IT 강국인 스웨덴의 저력을 쌓아가고 있다.
스웨덴은 현재 스톡홀름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인 구텐베르겐 지역에 시스타사이언스보다 더 큰 규모의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는 등 IT산업을 주도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스웨덴 대표기업이자 세계 3대 휴대폰업체이기도 한 에릭슨사의 주가가 이달 들어 최고가 대비 67%나 떨어질 만큼 기술중심의 IT기업 대부분이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
스웨덴 최대 벤처캐피털사인 3i의 앤더스 크래프트 팀장은 "기술중심 회사들은 기관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유치가 어렵고 시장환경도 안 좋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심하게는 향후 7년 정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분석했다.
스웨덴 벤처캐피털업계는 지난 2000년 194억크로나(2조5,996억원)였던 투자규모가 지난해에는 189억크로나(2조5,326억원)로 줄었고 올해도 기업부문에 대한 신규투자는 지난 상반기까지 전년동기 대비 33%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산유국인 노르웨이 역시 최근 주가가 연초 대비 30% 가량, 지난 2000년 이후부터는 50%나 떨어져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정부자금을 토대로 벤처캐피털 등에 투자하고 있는 SND인베스트의 관계자는 "노르웨이는 지난 5~6년간 나름대로 호황을 누려왔고 산유국이라는 특성이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며 "지금이 밑바닥에 근접해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당장 경제흐름을 뒤바꿀 큰 변화요인이 없는 것이 문제지만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투명성과 다양한 자금회수로 활로를 찾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벤처캐피털사들은 주식시장 등록(IPO)을 통한 투자자금 회수(exit)가 어려워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
이들 국가의 벤처캐피털사들은 무엇보다 바이아웃이나 M&A 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주식, 특히 코스닥시장의 추락상황 속에서도 IPO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기댈 수 밖에 없는 국내 벤처캐피털사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들 국가 투자시장의 환경과 흐름이 그만큼 다양화돼있고 왜곡돼 있지않는 등 선진적 기업 여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주 요인이다.
스웨덴 벤처캐피털사들은 지난해 투자자금 회수는 129건으로 금액으론 82억크로나(약 1조988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76%는 M&A 등 기업매매로 실현했으며 금융기관에 대한 매각도 8%에 이르렀다.IPO를 통한 회수는 단 4%에 그쳤다.
올 들어서는 지난 상반기까지 회수상황은 63건이지만 금액으로는 15억크로나(약 2,010억원)에 머물고 있다.
더군다나 이 중 37%인 23건은 청산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나머지는 35%가 금융기관에 대한 매각, 기업에 대한 매각이 22% 등이다.
노르웨이도 IPO를 통한 자금회수 건수는 20%를 밑돌 만큼 M&A 등 회수시장이 다양화 돼 있다. SND인베스트의 비요른뢰블레 본부장은 "노르웨이는 주식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어 IPO를 통한 자금회수에는 한계가 많다"며 "대신 M&A나 바이아웃(Buyout)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의 벤처캐피털사들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무엇보다 투명한 펀드운용과 관리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펀드 출자자들은 항상 펀드운용과 관련 회사에 대한 감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즉 투자자 가운데 지분율 기준 10%을 확보하면 감사요청을 발의할 수 있고 이 발의와 관련 전체 투자자 모임을 소집, 참석자 가운데 3분의 2가 인정하면 감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스웨덴의 경우 연간 결성되는 펀드자금의 평균 60% 가량이 외국에서 출자되는 등 외국자본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는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 벤처캐피털의 저력이 되는 것이다.
이들 국가 벤처캐피털사들은 경기위축에 따른 어려움 속에서도 이처럼 투명한 펀드운용과 다양한 투자자금 회수 기법을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와 경쟁력 있는 역량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자국의 벤처산업 육성에 절대적인 기여로 이어질 뿐더러 나아가 세계적인 투자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스톡홀름(스웨덴)= 남문현기자 moon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