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실기업의 재기

미국에서 벤처가 잘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정직한 실패(honest failure)'에 대한 사회적인 관용이 꼽힌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미국은 문자 그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꽃필 수 있는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방대한 시장에다 원천기술 개발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세계의 자본이 몰려들고 에인절로 활동하는 성공한 사업가들이 많아 창의적인 기업가정신과 좋은 사업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좋은 조건에다 정직한 실패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풍토는 기업가들로 하여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줌으로써 세계적인 기업들이 생성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정글법칙이 지배한다는 비즈니스의 세계이지만 능력 있고 정직한 사람에게는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철저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엄격한 시장규율이 확립돼 있는 미국 풍토에서 비록 사업에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실패가 무능ㆍ거짓과 부정한 행위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 경우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얼마나 뜻밖인가. 그에 비하면 인정과 의리 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가 이유불문하고 실패에 대해 냉혹하기 짝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아무리 유능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도 한번 실패의 낙인이 찍히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승자가 되기 위해 흔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거나 부정한 방법도 마다 않는 기업풍토는 아마 이러한 '실패의 공포'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절차와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단선적인 사고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실패한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한번 망한 기업이 회생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와 함께 부실의 수렁에 빠진 많은 기업들 중에서 상당수가 회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공중분해되다시피한 과거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재기가 돋보인다는 지적이다. 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나 우리 경제를 위해서 부실기업들이 이른 시일 안에 정상화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실패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한번 부실의 낙인이 찍히면 냉혹한 구조조정의 수술을 피할 수 없다. 워크아웃ㆍ법정관리ㆍ화의 등 절차와 방식은 다르지만 기업의 모든 활동은 통제되고 기업은 채무 불이행자로서의 불이익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부실기업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직원의 사기저하와 인력이탈, 기업이미지 추락과 바이어의 외면,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붕괴 등으로 기업의 무형자산이 망가지는 것이라는 게 당사자들의 하소연이다. 건물이나 기계 등과 같은 실물자산은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장만할 수 있지만 인력과 판매망, 소비자의 신뢰와 같은 무형자산은 단기간에 일궈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일단 부실기업으로 전락되고 차가운 금융논리의 지배를 받게 되면 무형자산과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여지는 별로 없다. 비록 소유구조ㆍ지배구조가 달라지고 기업명이 바뀌었어도 수십년에 걸쳐 쌓아올린 기업의 무형자산을 살린다는 점에서 부실기업의 재기는 값진 것이다. 많은 부실기업들이 부활할 수 있도록 부실의 책임은 엄격히 묻되 잠재력이 있는 경우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은 정직한 실패에 관용을 베푸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기에 성공한 부실기업들은 이런 면에서 사회적 책임이 크다. 국민부담으로 남게 된 막대한 공적자금의 수혜자들이기도 하다. 재기에 성공한 부실기업들이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길은 경쟁력과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다시 부실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경우 우리도 정직한 실패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논설위원(經營博) srpark@sed.co.kr /논설위원(經營博) 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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