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조치훈 9단] 일본 기세이전 고바야시에 2연승

『목숨을 걸고 둔다.』일본에서 활약중인 조치훈(43) 9단의 좌우명이 또 한번 빛을 발했다. 趙9단은 지난 27·28일 일본기전 서열 1위인 기세이전 도전7번기 제2국에서 고바야시 고이치 9단에게 208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지난 13일 부친 조남석씨의 별세로 인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아 마음이 흔들릴 만도 하련만 이틀간의 대격전 끝에 「숙명의 라이벌」인 상대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것이다. 이처럼 趙9단의 기풍과 개인사에는 시퍼런 칼바람과 불타는 집념이 느껴진다. 대표적인 예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趙9단의 「휠체어 대국」. 지난 86년 일본 극우파의 테러로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대국을 강행했다. 당시 기성전을 놓고 격돌한 기사는 역시 「평생의 숙적」 고바야시 9단. 이로써 「목숨을 걸고 둔다」는 그의 좌우명은 유명해졌지만 趙9단은 4대2로 패배했다. 이후 그는 10년 가까이 슬럼프에 빠져 한때 술로 방황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趙9단은 94년 기성전을 거머쥐면서 재기했고 「3년 연속 대삼관」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바둑 스타일 역시 독특하다. 한 수를 착수하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장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바둑 초반에 이미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정확한 착수를 해낸다. 파괴적인 기풍으로 「폭파전문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은 지레 기가 질려버린다. 趙9단의 이런 질경이보다 질긴 투혼, 프로정신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둑계 주변의 인사들은 그 이유를 조남철가의 「프로 정신」으로 돌린다. 조남철가는 조남철 9단을 비롯해 조상연 5단, 조치훈 9단, 최규병 8단, 이성재 4단 등을 배출한 한국 최대의 바둑가문. 총 35단이라는 단수가 말해주듯 생명보다 바둑을 중시한다. 지난 15일 저녁 무렵 서울 방배동 자택. 趙9단은 부친의 영전에 분향한 뒤 무릎을 꿇고 앉아 30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입을 굳게 다문 채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부친의 임종은 물론 발인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어린 나이에 오직 바둑 하나만 믿고 가족과 헤어져 일본으로 건너간 趙9단. 혹시 그는 부친의 마지막 모습마저 볼 수 없는 프로기사로서의 자신의 숙명을 곱씹고 있었던 건 아닐는지. 부친의 곁에 있어야 할 시간에 趙9단은 프랑스 파리에서 고바야시 9단과 기세이전 제1국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趙9단은 일본 기성전 첫대국을 승리로 끝낸 뒤에야 15일 홀로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너희들은 프로 기사다. 부모보다 시합이 더 중요하다는 각오로 바둑을 두라』는 망인의 평소 지론에 따라 가족들이 부친의 타계소식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보다 바둑을 더 중시하라」는 고 조남철씨의 지론 역시 「프로 집안」에서나 나올 법한 말. 그래서 호사가들이 『19로라는 좁은 바둑판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조치훈의 투혼과 생명력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도전3국은 2월 3·4일 일본 아오모리현 구로이시에 있는 오치아이 온천에서 열린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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