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 신 홍 노사정위원장

“노사관계에 있어서 왕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화문화가 부족해서 비생산적인 노사관계가 되풀이 되고 있는데 이는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노사가 모두 한 발짝 양보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등 `흥정의 기술`을 발전시켜 노사관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신 홍 노사정위원장은 건전한 노사관계 정착의 관건으로 `대화의 기술`을 이같이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그 동안 개별기업 중심의 단선적인 교섭구조로 인해 갈등적인 노사관계가 지속돼 왔다”며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교섭구조를 산업별ㆍ지역별로 중층화 시킬 수 있도록 노사정위의 기능을 확대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노사정위는 세부적이고 지엽적인 것 대신에 큰 원칙 중심으로 합의를 도출하되 일정기간 동안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은 정부에 넘겨 논의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노사정위에서 합의된 내용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정례적으로 보고하고 국무회의에도 참석해서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노사정위의 활동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지난 15일로 출범 5주년을 맞은 노사정위원회는 그 간 약 960차례의 회의에서 실업ㆍ고용ㆍ구조조정ㆍ노사관계ㆍ사회보장 등의 많은 영역에서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특히 민주노총과 교원노조의 합법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보장, 단체협약의 실효성 확보방안 마련 등 주요 노사 현안문제를 원만히 해결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출범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비교해서 사회 경제적인 여건이 달라지면서 합의가 어려워지는 등 지지부진 했던 측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초기 사회적 합의 등 성과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 운영방식을 개선해 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논의 시한제, 다수결제 도입 등에 대해 논의가 한창인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이십니까. ▲합의제 운영 등 위원회의 기존 운영방식에 개선할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너무 세세하고 지엽적인 현안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큰 틀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것은 노사정 당사간의 회의에서 결정돼야 할 것이지만 회의의 종결 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의제를 합의제로 운영할 경우 노사 양측의 입장 등에 의해 논의가 무한정 길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의제에 논의 기간을 설정하는 `논의 시한제`를 도입하기 위해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논의 시한은 사안별로 각각 다르며 기간은 위원들이 서로 조율해서 정할 것입니다. 시한 내에 합의가 안될 경우에는 그 동안의 논의 결과를 정부로 넘길 생각입니다. 또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본 위원회는 합의제를 유지하되 상무위원회와 특위ㆍ소위에서는 다수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위ㆍ소위에서는 기본적인 사실 확인과 의견 개진 등이 필요한데 여기에서부터 합의에 도달하려고 하니까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 정부 들어서면서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격상과 기능 확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예산과 인사권까지 부여해 명실공히 독립 기구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노사정위는 대통령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조직의 성격과 역할 등에 대해서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고 또 노사정 당사자들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서 정례적으로 대통령에게 이행사항을 보고하고 필요시에는 국무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수위와 교감이 있었나요. ▲지난 번에 인수위 위원들이 저희 노사정위를 방문했을 때 상당부분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지난달 15일에 개최한 노사정위 토론회에서도 긍정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노사정위의 위상에 대해서는 오는 중순께 노사정 당사자가 참석하는 상무위원회와 본 위원회를 개최해서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또 새 정부와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서 이 같은 건의사항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최근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의가 불거지면서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방안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에 대해서 가장 중점을 두고 해결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비정규근로자 문제는 고용안정 문제와 차별제한 그리고 실업대책 등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서 관련 노동법의 개정을 포함하는 대책 안에 대해서는 노사정간의 생각이 서로 다르고 공익위원 간에도 의견차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사정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법마련이 간단하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있고 또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의지도 있는 만큼 노사정의 의견 절충을 등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합의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인수위에서는 산별노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노사정위내에 업종별ㆍ지역별 위원회의 설치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계는 물론 정부도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등 쉽사리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개별 기업의 문제가 전국의 노사분규를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는 등 단선적인 기업별 교섭구조로 인해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산별ㆍ업종별ㆍ지역별로 교섭 구조를 중층화해서 교섭을 효율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공특위와 금융특위 등을 확대시켜서 공공ㆍ금융ㆍ운수 등 업종별 협의회를 설치해서 산별교섭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또 중앙노사정위에만 업무가 과부화됨으로써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단위의 노사정협의회를 만들어서 노사관계 일반 외에도 실업 및 고용정책ㆍ직업훈련ㆍ기업단위 노사협력 프로그램 실시와 같은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업무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지요. ▲노동정책과 관련이 있는 경제ㆍ사회정책은 모두 노사정위의 업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임금과 세제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매년 경영계와 노동계가 만나서 당시에 처한 상황에 따라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합의해서 정부가 그 정책을 채택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영계가 올해에 경제 악화로 경영에 부담이 되면 법인세를 인하해주고 노동계가 힘들면 근로소득세를 인하해달라고 합의해서 정부에 요청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사회경제협의회(SER)가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강제 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나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므로 이를 정부에 권고하면 `사회적인 의무`가 되어서 존중하는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인수위에도 이 같은 의견을 건의해 놓았는데 인수위도 동감하고 전향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아 노사정위의 대표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민노총을 참여시키기 위한 복안이 있으십니까. ▲제가 개인적으로도 아는 분들이 많아서 지난해 위원장에 취임한 후 민노총을 방문해서 참여해줄 것을 부탁도 했고 수시로 연락도 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민노총의 참여 문제는 민노총 이외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민노총에서 주장하는 산별 체제의 법제화 등의 요구는 노사정위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현재 새 정부와 노사정위는 민주노총의 주장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를 하고 있으므로 민주노총도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의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신중한 검토를 해 주기를 부탁 드립니다. /정리=전용호기자 chamgil@sed.co.kr ■ 발자취 신 홍 위원장은 우리나라 노동법 개혁에 많은 역할을 했고 우수한 후학들을 배출한 학자로 유명하다.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에 진보적 학생 단체인 `사회법학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노동법에 대한 관심을 가진 그는 이후 평생을 노동법 연구에 바쳤다. 비뚤어진 한국의 노동법 개정에 오랜 기간동안 노력을 기울인 신 위원장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2년부터다. 92년 4월부터 96년 12월까지 정부가 설치한 노동관계법연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굴절되었던 노동법의 내용을 바로 잡고 국제 기준에 걸 맞는 집단적 노동관계법의 개정안을 마련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만든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이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1997년에 개정된 노동법의 기초가 되었다. 신 위원장은 또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근로기준분과 위원회 위원장),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맡으면서 노사관계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간의 근로시간단축에 관한 이견을 합의 가능할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대외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신 위원장은 지난 96년부터 ILO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노동법 및 사회보장학회(ISLLSS) 집행위원과 한국 지부장을 맡아 우리 노동법학계와 국제학계와의 교류 활성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약력 ▲58년 서울고졸 ▲62년 서울대 법학과졸 ▲71~76년 고려대 법대 조ㆍ부교수 ▲84년 서울대 법학박사 ▲85~96년 노동부 행정심판위원 ▲87년 서울시립대 법정대학장 ▲91~95년 서울시립대 총장 ▲92년 노동관계법연구위원장 ▲96년 국제노동법·사회보장학회 집행이사 겸 한국지부장 ▲97년 대통령자문 노사관계개혁위원 ▲99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2002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 내가 본 신 홍 위원장 이광택(국민대 법학과 교수) 신 홍 위원장의 노동과의 인연은 서울법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위원장은 모든 학생이 판검사가 되기 위해 고등고시에 매달리던 시절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보호장치가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을 개탄하고 진보적 학생단체인 사회법학회에 참여해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학창시절부터 사회 현실에 대한 남다른 문제의식과 개혁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노동법 교수가 된 신 위원장은 우리나라 노동법학자들의 연구모임인 한국노동법학회 회장을 역임한 노동법의 대가가 되었으며 30여년 동안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등 각종 정부위원회 등에 참여해 이론을 정책수립과 실행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신 홍 위원장은 2002년 8월 노사정위 위원장으로 위촉된 이후 노사대결로 일관되어온 풍토 속에서 자칫 격해지기 쉬운 노사정간 토론의 장을 온화한 분위기로 이끌어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노사정위원회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 홍 위원장은 대결의 노사관계를 대화와 협력의 노사관계로 창조해 가는데 혼신을 다해왔다고 볼 수 있다. 자실인의(慈室忍衣)이라는 그의 좌우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내와 자비를 생활화함으로써 인간관계에 있어서 항상 인내와 부드러움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부드러움이 업무에 있어서는 단 한치도 적용되지 않는다. 2000년부터 2년여 동안 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단축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그가 보여준 빈틈없는 상황과 내용판단은 이미 노사정 각측 위원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 홍 위원장은 노동법 학자이지만 그의 관심범위의 방대함을 알게 되면 가히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특히 문학과 예술에 대한 애착은 그의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매우 정평이 나있다. 그가 대학 재학시절에 당시 휴면 중이었던 서울법대 문학회를 재건한 것은 그의 대학 친구들과 후배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노사정기구를 방문했을 때도 바쁜 공식일정 틈틈이 문학과 미술 박물관을 순회하면서 작가들의 연혁, 작품의 내용, 관련된 에피소드 등을 너무 자상하게 설명해서 동행한 노사정 대표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담: 윤종열 사회부장 yjyu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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