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화의제도 겉돈다

정상화는 올해 4곳뿐…"부실연장" 비난화의 기업들의 파산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지면서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화의기업'을 유지해오다 지난해를 고비로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파산국면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그 동안 기업과 채권 금융기관들이 협조, 자율적으로 채무부담을 유예하면서 갱생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화의제도가 단순히 기업파산을 연기시켰으며 오히려 부실만 심화 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화의 기업의 파산 급증 지난 2000년 5개사가 법원에 의해 화의취소(화의취소 후 파산선고를 받음)가 된 후 지난해 26개사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정상기업으로 갱생을 의미하는 화의종결(보고의무면제) 기업은 지난 2000년 3개사에서 지난해 5개사, 올 9월까지 4개사에 불과했다. 최근 화의기업의 파산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IMF이후 폭주한 화의기업의 채무유예기간(대개 3~5년)이 끝나기 때문이다. 법원 및 금융계에서는 그 동안 잠재적 부실상태에 빠져있던 화의 기업들의 대다수가 파산처분을 받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의기간 중 되려 부실심화 화의란 채권자(금융기관)와 채무자(기업)가 기업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법원에서 인가를 받아 실행하는 제도로, 채권ㆍ채무자 간의 부채조정을 통한 채무지불 유예 합의를 말한다. 화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와는 달리 경영권과 기업회생 주도권을 기존 대주주가 갖는다 지난 98년 화의절차를 시작한 R사가 이런 경우. 전광판과 무대조명의 제조ㆍ수출로 주목 받던 이 회사는 매출이 정체를 보이며 자금난에 빠지자 서울지법에 화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결국 인가취소 후 지난 2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법원 관계자는 "파산관재인이 자산을 점검해 본 결과 겨우 수천만원이 남았을 정도로 부실이 심했다"며 "차라리 98년 파산선고를 하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기업들은 경영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법정관리보다는 화의를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채권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화의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회사가 경영이 나빠지거나 경영자가 부정한 생각을 가지더라도 막을 방도가 없다. 파산을 시키는 것이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책임지기 싫어하는 금융기관의 도덕적해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R사 채권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R사는 더 일찍 파산시키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으나 차마 '내 손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서울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우리 채권자들은 엄격한 기업평가나 이를 통한 합리적인 판단이 부족, '망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수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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