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드컵 선물 '세대화합'

2002 한일 월드컵에 대한 평가들이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우리는 4강 진출의 성적은 물론, 대회의 진행, 붉은 악마들의 응원으로 상징되는 국민의 성원, 그 어느 모로 보나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2002월드컵의 진정한 승리자는 한국'이라는 외국언론의 평가는 우리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부모에 감사하는 R세대 한국팀의 4강 진출이 확정되던 날 TV화면에 잡힌 붉은 티셔츠차림의 젊은이가 말한 소감 한마디가 강한 인상으로 기자의 뇌리에 남아 있다. "나를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 고맙습니다" . 이땅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에게 그처럼 기분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 중의 하나가 이 같은 신ㆍ구세대 간의 화합과 일체감의 회복이 아닐까 한다. 기성 세대들은 신세대들에 대해 나약하다거나, 버릇없다거나, 자기만 알고 이웃이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세대라고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또 젊은 세대들로부터 '낡고 부패한 세대'라고 비판이라도 받을라 치면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애써 서운함을 달랬다. 그러나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젊은 세대들은 나약하지도, 버릇 없지도 않고 특히 나라사랑은 표현방법만 다를 뿐 기성세대보다 열정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태극기로 스커트와 셔츠를 만들어 입었고 얼굴이며, 가슴팍이며, 박박 깎은 머리며 가리지 않고 온몸에 태극기를 그려넣었다. 기장의 스탠드에선 작은 운동장만한 태극기를 물결 치게 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들의 나라사랑은 재치 있고, 유연하고, 건강했다. 태극기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은 "나중에 이 옷을 어떻게 할 건가요"라는 물음에 "태울 거예요"라고 말했다. 고이 접어서 장롱에 보관하겠다는 생각보다 더 경건하게 느껴졌다. 태극기나 애국가 앞에선 부동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으로 배우고 살아온 아버지 세대들에겐 깨우침이 될 만 했다. 월드컵에서 젊은 세대들이 할 일은 즐기는 것 뿐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즐긴 게 아니라 젊은 에너지와 창의를 맘껏 발산하며 즐겼다. 절도를 지켰고 이웃을 배려했다. 준결승전이 펼쳐지던 날 전국의 길거리 응원인파는 700만명에 이르렀다. 서울의 광화문ㆍ시청일대에만 100만명이 모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말끔히 청소됐고 구두 조차 밟힌 사람이 없었다. 밤새워 승리를 축하하고 다음날은 신속히 평상으로 되돌아 갔다. 아버지 세대들은 그런 인파에서 민주화 시위를 연상했다. 이번에도 그런 걱정이 없지 않았으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그만큼 건강해져 있었다. 아버지 세대는 일제식민통치시대를 거쳐 6ㆍ25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계 10위의 경제강국을 일궈낸 세대다. 이들 세대가 이룩한 경제력의 토대 위에서 한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국제행사를 유치했다. 한국 땅에서 월드컵과 올림픽의 영광을 누린 사람들은 행운의 동시대인이다. 그 같은 영광을 재현시키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해내야 할 몫이다. 한일 월드컵은 1930년 첫 대회 후 72년 만에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대회고 88서울올림픽도 1896년 1회 대회 이후 92년 만에 아시아에선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주최한 대회다. 후세에 이어질 영광으로 앞으로는 이제까지 보다 자주 아시아에서 개최되겠지만 그래도 한국이 다시 주최하려면 상당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월드컵과 올림픽의 영광을 다시 누리려면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 실력과 함께 우리의 경제력을 4강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오늘의 건강하고 창의적인 젊은 세대들이 아버지 세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 한 그 꿈은 앞당겨 이뤄질 것이다. 임종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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