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3월이 걱정된다(사설)

벌써 3월이다. 연초부터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불안과 좌절속에 두달을 보냈다. 어느새 시간은 쉴새없이 흘러 3월이 됐고 만물에는 소생의 기운이 차오르고 있다. 이 봄은 우리에게 묵은 때를 벗어버리고 새출발을 하라고 손짓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우리에겐 그같은 자연의 순리를 음미할 여유가 없다.지난 두달동안은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사람들은 시간이 가고 있음을 잊었을 법도하다. 잠시 지난 두달을 돌이켜 보자. 노동법개정과 관련한 총파업으로 막이 오른 97년은 한보철강부도,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 귀순자 이한영씨의 피격사망,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스캔들을 거쳐 김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담화, 당정개편사태로 이어졌다. 올해 10대뉴스가 한꺼번에 밀어닥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국민들의 얼을 빼놓았다. 하나같이 좋은 일이 아닐뿐 아니라 과거의 지도자들이 저질렀던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데서 심각성이 더하다. ○소생의 3월은 찾아왔건만 이런 사태의 와중에서 국민들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내경제는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과소비 자제는 극소수의 부유층에나 해당되는 얘기일 뿐 서민들에겐 그럴 여유라곤 없다. 재래시장에 가보면 저마다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라고 한숨들이고 그속에서 물가는 계속 올라 가계의 주름살도 깊다. ○사과만 있을뿐 원인 그대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이를 바로잡기위해 남은 임기 1년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것이 김대통령의 담화였다.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담화는 국민적 공감을 샀고 자세를 한껏 낮춰 동정을 자아낸 면도 있었다. 그러나 사과만 있었지 문제의 근본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한보사태에 대한 원인규명과 정경유착의 실체가 명확하게 파헤쳐지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한 중소기업인이 정치검사들을 「해고」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내면서까지 검찰의 한보수사를 비판했겠는가. 정부의 경제팀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한보에 투자한 6조원이 아깝기로서니 경제성을 검토함도 없이 2조∼3조원을 더 부어넣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매몰비용」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한보사태의 와중에서 진행되고 있는 은행장선임 과정은 어떤가. 한보사건으로 은행장들이 쇠고랑을 차고 임원들이 무더기로 불명예 퇴진하는 한편에서 일부 행장후보 임원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실세들을 기웃거리며 줄대기하는 작태가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쇠고랑을 차는 한이 있더라도 은행장은 되고봐야 한다는 배짱인지 그들의 반성을 모르는 자세에 아연할 뿐이다. ○노동계 대학가의 불안 기류 김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되던날 현철씨의 개인사무실 폐쇄장면이 TV화면에 비쳐졌다. 현철씨는 그자리에 없었으나 그 방을 치우는 직원들이 카메라를 밀쳐내고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퍼붓는 태도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권력을 등에 업고 국민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현철씨의 주변을 보는 것 같았다. 여러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국민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정부는 언제까지 이같은 곤혹속에 국민들을 얽어매어 놓을 셈인가. 사과 한마디로 진실은 덮어질 수가 없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만 지난 두달동안 모두의 가슴을 짓눌렀던 사건들의 잔영을 떨쳐버리고 일어 설 수 있다. 지금 노동계는 노동법개정을 둘러싸고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대학가는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새학기가 시작된다. 국민적 의혹사건들이 학생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이 3월이 자못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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