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냉철하고 이지적이면서도 온화

■ 내가 본 이기호특보 - 안충영(대외경제정책硏원장)필자가 이기호 대통령 경제복지노동특보를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1998년 3월초, IMF 관리체제아래 긴박한 경제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출범한 대통령주재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였다. 당시 이기호 특보는 노동부장관으로서, 필자는 민간멤버의 자격으로서 참여하였다. 이기호 특보는 그 뒤에도 '코리아-IMF 프로그램' 이행 등 주요 경제현안 논의를 위하여 정례적으로 개최된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언제나 냉철하고 이지적인 논리로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온화한 풍모를 견지하여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IMF와의 협약아래 우리 경제는 광범위한 개혁과 구조조정을 숨가쁘게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길거리에는 직장을 잃은 노숙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이 특보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하여 기업이 경영상 긴박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합법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는 한편,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기호 특보는 1999년 5월부터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ㆍ기업ㆍ공공ㆍ노동 등 4대 부문 경제개혁의 전면에서 조율사로서 활약을 하였다. '금융' 과 '기업' 사이에 맞물려 돌아가는 부실의 악순환을 제거하고 선진적인 기업지배구조를 정착시키는 한편, 공기업 민영화 ? 실업자 대책 ? 생산적 복지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경제기획원에서 예산ㆍ기획ㆍ공정거래분야를 두루 섭렵한 그는 테크노크라트로서는 보기 드문 특유의 친화력으로 정부부처 간은 물론, 기업과 노동계 사이에서 자칫 첨예한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는 구조조정의 과제를 원활하게 마무리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한반도를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hub)로 만드는 길이 21세기 한국의 국가비전이고, 이는 한 정권의 차원을 넘어서는 민족사적인 미래지향 과제라는 이 특보의 신념으로부터 필자는 한국경제의 밝은 미래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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