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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월드컵 영웅' 응골로 캉테를 아시나요

박민영 문화레저부 차장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대표팀은 지난 17일(한국시간) 파리 샹젤리제 거리 개선행진을 펼친 직후 인근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인 엘리제궁으로 이동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식 환영행사에서 선수들은 폴 포그바의 주도로 노래를 불렀다. 유명한 곡 ‘오 샹젤리제’의 후렴구를 개사했다. 바뀐 가사는 “응골로 캉테~”였다.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이 월드컵 우승의 주역으로 응골로 캉테(27)를 꼽는다는 방증이다.

캉테는 프랑스 미드필더다. 많은 전문가 역시 영플레이어상을 받은 킬리안 음바페(4골)도 앙투안 그리즈만(4골 2도움)도 디디에 데샹 감독도 아닌 캉테를 수훈 갑으로 평가하고 있다.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며 B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게리 리네커는 “캉테가 있어 프랑스가 우승할 수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핵심 전력이자 혼자 두 명의 몫을 해내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캉테는 ‘개천에서 난 흙수저’다. 아프리카 말리 이민자 집안의 아들로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8명의 동생을 챙겨야 했다. 축구를 좋아했으나 열아홉 살 때까지 프로팀이나 아카데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가정형편도 어려웠지만 168㎝의 왜소한 그는 클럽팀에서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열아홉 살이던 2010년 프랑스 리그 불로뉴와의 아마추어 계약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2부 리그 캉에서 뛰며 팀이 정규리그인 리그1로 승격하는 데 공헌했다. 스카우터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옮겨 무명 팀 레스터시티의 2015-2016시즌 ‘동화 같은’ 정규리그 우승을 뒤에서 도왔다. 2016-2017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의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월드컵 우승까지 함께하면서 ‘우승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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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테가 그냥 빅리그 명문팀의 러브콜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온순함·수줍음·배려·겸손·검소·미소·부지런함…. 그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들이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늘 ‘인기 만점’이다. 이미 오래전 스타의 반열에 들어선 그였지만 지난해 주급 1억6,000만원 수준에 올라서야 비로소 첫 자동차로 3,000만원짜리 중고 미니쿠퍼를 샀고 1월 사고로 차 옆면이 파손됐을 때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고 경기장에 나타난 일화는 유명하다. 경기 중에는 왕성한 활동량과 정확한 패스로 보이지 않게 찬스를 만들어준다. 공을 잡은 동료가 쉽게 패스할 수 있도록 언제든 미리 달려가 자리를 잡는다. 프랑스 대표팀이나 첼시 공격수의 골에는 캉테의 헌신이 있다는 말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은 ‘무지개팀’ 또는 ‘검은 프랑스’로 불렸다. 23명 중 21명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고 그중 15명은 아프리카계였다고 한다. 그런 프랑스가 ‘원 팀’으로 정상까지 치달은 데는 캉테 같은 선수의 헌신이 있었다. 러시아월드컵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축구는 ‘영웅’을 찾고 있다. 우리 대표팀은 순혈주의를 고집하지만 상설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유럽·일본·중국 등지에서 뛰다 소집돼 짧은 시간에 손발을 맞춰야 한다. 인화가 필수다. 경기력은 기본이겠지만 감독이든 선수든 배려와 헌신을 선발 기준의 위쪽 순위에 뒀으면 한다.
mypark@sedaily.com

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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