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국회 연설에서 “122개 공공기관의 추가 지방 이전을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자신이 국무총리를 지낸 참여정부 시절 국가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주도했다. 집권 여당 대표가 된 뒤에는 ‘혁신도시 시즌2’를 예고했고 정부는 이에 발맞춰 이전 대상 공공기관을 추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혁신도시 시즌2 격의 구상이 집권 여당 대표 입에서 나오자 공공기관 직원들 사이에서는 ‘혁신도시가 아니라 유령도시를 또 만들려고 한다’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주말이면 직원들이 수도권 집으로 돌아가 도시 전체가 휑해지는 분위기를 유령도시에 빗댄 것이다.
전국 10개 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의 대거 이전으로 구색은 갖췄지만 교육·의료·교통 등 기본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 출연기관인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10개 혁신도시(읍면동 기준)의 1,000명당 병·의원 수는 0.86개로 전국 평균인 1.33개에 크게 못 미친다. 대형병원과 유치원·어린이집 등도 평균보다 적다. 부족한 도시 인프라 탓에 혁신도시로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58%에 그친다. 광주·전남의 경우 △주거 △편의·의료서비스 △교육 △여가 등 4개 정착 요건 중 주거를 제외한 3개 요건에서 ‘불만족’ 비중이 50%를 넘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대표가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이전 대상 공공기관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의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마저 나왔다.
행정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의 혁신도시 시즌2 구상에 대해 “지역균형발전 시각으로만 접근해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10년을 돌이켜보면 공공기관 이전 계획 자체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이라면서 “사회적 총비용 대비 인구·자원의 분산 효과는 미미했다”고 총평했다. 1단계 혁신도시 프로젝트를 사실상 ‘실패’로 결론지은 것이다.
이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업무 효율성 저하다. 효과 대비 비효율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서울 등 수도권 집중화를 해소할 수 있는 지역 경제 활성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업무 연관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물리적으로 공공기관을 떼어놓기만 하는 방식으로는 잃는 게 더 많다고 지적했다. 장거리 출장 피로에 따른 근무 질 저하, 업무 연속성 단절, 유관 기관 간 소통 단절 같은 수치화하기 어려운 무형적 비효율 요소까지 따지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목표에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10개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30곳 소속 임직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6.3%가 ‘업무효율이 낮아졌다’고 답한 것도 이러한 지적과 맞아떨어진다. 응답자 10명 중 5명꼴로 일주일에 1~2회 타 지역으로 출장을 다닌다고 답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혁신도시 육성 계획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만 매몰 되면 안 된다”면서 “국가 전체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이 지역균형발전을 표심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국가 대계가 포퓰리즘으로 흐르다 보니 ‘실패작’이 된 혁신도시 정책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2단계에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점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공공기관 이전이 추진된 지난 10년간 전국 곳곳이 콘크리트더미 공사판이었다”면서 “공공기관의 획일적 이전을 또다시 추진하겠다는 (여당 대표의) 발상은 구시대적인 정치공학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 그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혁신도시를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행정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 인프라 구축만을 임직원 정착의 필요조건으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의 목표가 공공기관 이전 자체가 된 게 아니었는지 정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 부처와의 협업은 물론 이전기관끼리의 시너지도 고려해야 하는데 혁신도시 1단계 구상에서는 이런 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종수 교수 역시 “혁신도시 육성은 인구와 자원이 집중된 서울이 가진 핵심적인 요소를 간파하고 지방이 이러한 요소들을 갖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면서 “그 중심에는 문화와 교육이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