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빠르게 식어가는 지방경기]"재고만 넘쳐나…올해는 정말 절망적"

■더 휘청이는 지방 자영업자

"설 대목? 사라진 지 오래

더이상 물러설 곳조차 없다"

전통시장 상인들 한숨·눈시울

최저임금 쇼크에 불경기 덮쳐

"손님 실종…가게 닫을수밖에"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심우일기자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심우일기자



“전통시장이 어렵다는 말은 하도 들어서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힘들고 절망적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월 매출이 100 정도였다면 올해는 70 수준으로 뚝 떨어졌어요. 재고가 정리되면 다음 달이라도 가게 문을 닫을 생각입니다.”

6일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서 기자가 만난 김동혁(55·가명)씨는 푸념을 쏟아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지난 2010년부터 10년째 모래내시장에서 혁대·가방·지갑 등 각종 잡화를 취급해왔다. 전통시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면서 잡화 매출은 갈수록 쪼그라들었고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몇 달째 팔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재고만 넘쳐나고 있다. 김 씨는 “올해 설 연휴는 닷새나 되는데다 비까지 내려 매출이 전년 대비 40%나 떨어졌다”며 “그나마 모래내시장은 인천에서 가장 잘 되는 전통시장이라는데도 이 정도니 다른 시장 상인들은 죽을 맛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단돈 얼마라도 집에 가져갈 요량으로 지난해 12월부터 호떡 장사를 하고 있지만 재료비·가스비 등이 오르면서 손에 쥐는 것은 푼돈이다. “그나마 지금은 겨울이라 호떡 찾는 손님이라도 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마저도 뚝 끊길 것”이라며 입을 굳게 다문 김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6일 서울경제신문이 현장에서 만난 전통시장 상인들과 지역 소상공인들은 하나같이 “설 대목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더 이상 물러설 곳조차 없다”고 절망 섞인 하소연을 쏟아냈다. 인천 구월시장에서 5년째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이영은(44·가명)씨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서민들의 소득이 오르면 자영업자의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해서 믿고 기다렸는데 오히려 기업들은 일하던 사람을 줄이고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나서면서 전통시장을 찾던 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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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통시장에서는 ‘정품’ 대신 ‘비품’ 과일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비품은 약간 손상은 입었지만 먹는 데 지장이 없는 과일로 정품에 비해 30~50% 낮은 가격에 팔린다. 이 씨는 “우리 가게 옆에 비품 과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점포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며 “지난해만 해도 설 선물로 사과와 배 세트를 사가는 손님이 꽤 있었는데 올해는 과일 값 인상으로 이마저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가게 문을 닫을 수 없어 설날 하루만 쉬고 나왔는데 이렇게 장사가 안 되면 오후에라도 문을 닫고 전기료라도 아껴야 할 듯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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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최신영(37·가명)씨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때아닌 ‘설 불황’을 겪고 있다”며 한숨부터 쏟아냈다. 최씨는 “지난해만 해도 설 대목 전이나 설 연휴 기간에 선물 세트 주문이 평소보다 20%나 늘었는데 올해는 이런 주문 자체가 없다”며 “빵은 유통 기한이 있어 기껏 포장해놓은 세트를 다시 풀고 낱개로 떨이 판매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근 시장 분위기는 더욱 험악하다. 최 씨는 “지난 두 달 새 인근 점포 중 다섯 곳이 문을 닫았을 정도로 경기가 최악”이라며 “버틸 수 있는 곳은 사람을 줄이고 버티지 못하는 곳은 가게를 비우고 있어 설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빈 점포가 눈에 띄게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정부로부터 포장을 받을 정도로 청주 상권에서 유명한 최씨의 점포 역시 최저임금 인상과 불경기 여파로 직원을 기존 6명에서 4명으로 줄였다.

소상공인들의 체감 경기는 통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 소상공인 체감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8.8로 전달에 비해 3.3포인트 낮아지며 지난해 10월 이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사에 응한 소상공인 10명 중 8명(76%) 정도가 ‘경기침체’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해 불경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 1월 체감 BSI는 50.7로 전월 대비 2포인트 떨어지며 11월 이후로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 정부의 ‘인위적인 비용 전가’부터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상공인의 특성상 경기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 폭을 줄이는 등 제도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등 보다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인천=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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