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지금 중국은] "우리가 세계 최고"…패권·광적 애국주의 부추기는 中 지도부

<1>라오바이싱, 중국몽에 의문 품다-흔들리는 사회주의 가치관

영토분쟁·무역전쟁엔 강경 대응

노동운동가·대학생 줄줄이 체포

빈부 격차·일당체제 반감 없애려

국가적 이벤트 개최해 관심 돌려

지난해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연설을 보던 안후이성의 한 대학 학생들이 국기를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지난해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연설을 보던 안후이성의 한 대학 학생들이 국기를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광둥성 선전에 있는 스마트제품 제조업체 멍파이는 지난해 말 공식성명을 통해 “화웨이 스마트폰을 사는 직원들에게 가격의 15%를 보조하겠다”면서 “애플 아이폰 구매시 아이폰의 가격만큼 벌금을 물릴 것”이라고 밝혔다. 상하이 주재 쓰촨성 상공회의소는 애플 제품을 산 사람은 업무에서 배제하고 반면 화웨이 제품에 대해서는 10%의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이 같은 방침에 동참하기로 한 청두RYD정보기술의 한 직원은 “우리 회사의 애국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수십명의 대학생들이 공안에 체포되거나 신원불명의 인물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학가가 쑥대밭이 됐다. 외신들은 지난해 7월 광둥성 후이저우의 한 공장에서 독립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베이징대를 비롯해 베이징·상하이·선전·우한 등지에서 동조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이 탄압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노조를 탄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사회주의 신념이 흔들리는 자리를 광적인 애국주의가 대체하고 있다. 경기둔화와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하는 중국 정부가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 불고 있는 중화 패권주의와 애국주의는 세계 경제·정치질서마저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이슈로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애국주의를 앞세운 지는 오래됐다. 이는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1989년 톈안먼 사태의 반작용으로도 해석된다. 6·4 톈안먼 사태 이후 덩샤오핑의 지명으로 국가주석직을 꿰찬 장쩌민은 민주화 운동을 ‘매국주의’라고 폄하하며 전국 학교에 애국주의 강화 교육을 지시했다. 1994년 8월에 중국 공산당이 발표한 ‘애국주의 교육 실시 강요’는 “애국주의와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일치한다”고 못 박았다.

그로부터 20여년 동안 중국은 애국주의 교육에 주력했다. 중국 정부는 ‘국익’에 관련된 사항에서는 의도적으로 강하게 대처한다.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이나 한국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가 그렇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도 이러한 패턴은 이어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건국절 기념사에서 “애국주의는 중화민족을 강건하게 단결시키는 정신역량”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 주석 등장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부강·민주·문명·자유·평등·법치·애국 등 12가지인데 전체적으로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또는 전통적 유교적 가치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첫째 항목이 부강이라는 점에서 결국 국가이익과 연결된다.


시 주석이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직’에 대한 기존 연임 제한을 철폐하고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한 것도 애국주의와 관련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른바 중국몽의 실현과 중화민족 부흥을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고, 공산당의 주도력뿐만 아니라 당의 핵심이라는 시진핑의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시진핑의 지도력이 손상될 것이라는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오히려 권한이 더 커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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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되는 경기 둔화와 빈부 격차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내거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메시지다. 이는 밖으로는 애국주의, 안으로는 시민사회조직의 탄압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정권의 정당성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중국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이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선부론’을 앞세우면서 시작됐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모두가 골고루 잘 산다는 것은 당대에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 됐다. 게다가 공산당 일당독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시민사회 조직 결성을 억압하면서 중국 건국의 초석이 된 사회주의적 사고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선전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저명한 노동운동가 5명이 돌연 연행되고 대학생들이 줄체포된 것은 흔들리는 중국의 사회주의를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선전 노조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사회주의 관련 움직임은 탄압하는 것이 중국이다. 하지만 여전히 글자 그대로의 사회주의를 믿는 세력도 없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앞서 선전 사태를 전하면서 “중국 지도자들은 열렬한 젊은 공산주의자라는 전혀 새로운 세력과 맞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중국 당국으로서는 큰 딜레마다. 사회주의적 공동체 가치관을 살리면서도 공산당 밖에서의 시민사회조직은 막아야 한다는 이중적인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시 주석 집권 이후 애국심과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윌리 랍 람 홍콩 중문대 정치학과 교수는 “시진핑은 유교를 새로운 도덕적 기준으로 재해석해 활용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무역전쟁 와중에서 중국이 최근 잇따라 국가적인 이벤트를 개최하는 이유도 이런 애국심 유도 차원에서 해석된다. 중국은 1월 달의 뒷면에 우주선 ‘창어 4호’를 착륙시켰다. 앞면이나 뒷면이나 같은 달인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를 ‘세계 최초’라며 흥행몰이를 한다. ‘달 쇼’의 덕분인지 지난달 “중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소재의 공상과학(SF) 영화 ‘유랑지구’는 중국 내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베이징의 한 시민은 “달 뒷면 착륙은 자랑스럽지만 이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며 “우리(중국) 사회의 ‘뒷면’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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