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공장 가동 중단 결정에 이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부지 제공으로 직격탄을 맞은 롯데가 중국 현지 식품제조 사업을 축소하기로 하는 등 한국 기업들의 탈중국이 잇따르면서 중국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이 본격적인 리스크 관리에 돌입했다. 사드 보복에 현지 금융당국발 규제 한파까지 몰아닥쳤던 최근 2년 사이에도 두 자릿수 자산성장률을 이어가던 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진출 1호인 중국 시장의 자산 확대 기조를 끝내 거둬들인 것이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중국 점포 자산 규모는 264억달러로 연간 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드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 2016년(14.2%)과 2017년(12.1%)에도 자산 규모를 두 자릿수로 확대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중 무역분쟁의 충격이 중국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한데다 성장률 둔화와 인건비 부담 증대로 국내 기업들이 잇단 철수 결정을 내리면서 온갖 악재 속에서도 버티기에 나섰던 은행들이 자산 긴축에 돌입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중은행 글로벌 담당 임원은 “최근 시중은행 리스크관리본부가 가장 예의주시하는 부분이 미중 무역전쟁 여파와 중국의 경기 하방 압력”이라며 “현지 기업의 실적 부진은 결국 은행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현재는 자산을 더 투입하지 않는 수준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드 국면 이후 국내 은행들은 한국 기업에 대한 포지션을 줄이는 대신 현지 우량 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2년간 금감원이 평가한 중국 법인의 현지 자금운용 지수는 2+등급에서 10등급으로 두 단계 뛰었다. 외환보유액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외국계 은행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 금융감독당국이 현지 중소기업 대출을 장려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문제는 국내 은행들의 영업력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중국 법인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현지 진출 대기업들이 최근 수년간 가동률을 줄여나가면서 대부분의 은행이 현대·기아차(협력사 포함)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20% 이하로 줄였고 협력사들의 부실률을 면밀히 체크한 덕에 고정이하여신비율을 전년보다 0.37%포인트 줄인 0.87%로 관리할 수 있었다”면서도 “10~20년 중국 사업을 이어왔다고 해도 당장 현지 네트워크가 취약해 중국 우량 기업 여신을 유치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푸념했다. 지난해 중국 법인 당기순이익 성장률이 42%에 달한 것 역시 현지 영업력이 강화된 결과라기보다는 금리 인상 기조에 따른 운용수익률 증대 효과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당장 중국 법인이 성과를 낼 수는 없지만 미중 무역갈등을 계기로 중국의 금융시장 개방이 점차 확대되면서 중국이 국내 은행의 미래 ‘캐시카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또 다른 은행의 한 글로벌 담당 임원은 “당장은 변동성이 크겠지만 금융업은 제조업처럼 단기적인 시각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없고 현지 금융당국의 눈치도 봐야 한다”며 “자산 리밸런싱을 통해 위험을 줄이는 데는 주력해야겠지만 중국은 언젠가 한국 금융의 캐시카우가 될 것이라는 게 장기적인 관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