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기강해이 지적, 한두 번도 아니고..." 무기력증 빠진 외교부

[한미정상 통화 유출 파문]

野 3당·보수 외교전문가까지

"국익 해치는 행위" 비판 가세

천영우 "강효상 출당시켜야"

직원들은 "어차피 우린 동네북"

조세영 신임 차관 "엄중 문책"

조세영(가운데) 외교부 제1차관이 2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조세영(가운데) 외교부 제1차관이 2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미대사관 소속 외교관으로부터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빼내 외부에 유출한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여당이 엄중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일부 야당 의원과 보수 외교 전문가들까지 ‘국익 훼손 행위’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사건에 직접 연루된 외교부에서는 크게 동요하거나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외교부 직원들은 “또 나온 기강 해이 사건”이라는 식으로 무덤덤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5년여 만에 외교부 본부로 ‘컴백’한 조세영 신임 외교부 1차관은 24일 취임 첫날부터 “타 부처에 비해 기강과 규율이 느슨하다”며 한탄했다.

정치권과 외교가에 따르면 한국당이 ‘강효상 구하기’ 작전에 돌입한 가운데 청와대와 여당, 야 3당은 강 의원의 행위가 국익에 반하는 행위라며 성토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심지어 한국당 소속의 윤상현 외교통일위원장은 물론 그간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을 꾸준히 비판해온 외교 전문가들조차 강 의원과 해당 외교관의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그 내용이 정부를 공격하는 데 정치적으로 아무리 유리한 것이라 하더라도 외교기밀을 폭로하는 것은 더 큰 국익을 해치는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천 이사장은 강 의원을 감싸는 한국당을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강 의원의 폭로를 두둔한다면 공당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며 “정부를 공격할 소재를 제공하는 데 아무리 큰 공을 세웠어도 차기 집권을 꿈꾸는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출당을 선택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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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와 정치권, 외교가 모두 ‘강효상 쇼크’에 빠졌지만 정작 비상이 걸려야 할 외교부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도 외교부 본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기강 해이 지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어차피 우리는 동네북 아닌가” 등의 자조 섞인 반응이 오갔다. 기밀 누출 외교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대변인실을 비롯해 관련 부서에서는 “조사 중”“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다”는 대답만 반복해서 내놓았다. 외교부의 한 간부 직원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청와대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일부 간부 직원들은 구체적인설명 없이 출입기자 등 조직 외부 인사들과 예정된 만남을 무기한 연기하는 방식으로 소극 대응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외교부에 첫 출근한 조 신임 차관은 취임식에서 긴 한탄과 함께 엄중히 경고했다. 조 차관은 지난 2013년 9월 외교부를 떠났다가 지난해 9월 국립외교원장으로 외교부 조직에 복귀했고 전일 차관 인사를 통해 본부로 완전히 돌아왔다. 조 차관은 “5년 동안 외교부를 떠나 있으면서 지켜보니 타 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강과 규율이 느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며 개인적 사유로 인사 배려를 요청하거나 과장·국장 보임 과정에 치열한 경쟁이 없는 점, 특정한 전문 분야에 속한 동료들끼리 보직을 주고받는 행태, 본부에서 짧게 일하고 해외로 나가는 분위기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조 차관은 “개인의 이익에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고 기꺼이 공적인 이익에 봉사하겠다는 각오야말로 고위공직자의 기본자세”라며 “기강해이와 범법행위도 엄중히 문책 조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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