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1일 한국 정부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을 공개적으로 거절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남측의 기대와 성의는 고맙지만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부산에 나가셔야 할 합당한 이유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한 데 대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나타내면서도 “아이들이라면 철이 없어 소뿔 위에 닭알(달걀) 쌓을 궁리를 했다고 하겠지만 남조선 사회를 움직인다는 사람들이 물 위에 그림 그릴 생각만 하고 있다”며 한국이 ‘신남방정책’에 북한을 ‘슬쩍 끼워 넣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북관계 경색을 부각하면서 들러리 역할에 대한 거부 의사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장을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통신은 “지난 11월5일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이번 회의에 참석해주실 것을 간절히 초청하는 친서를 정중히 보내어 왔다”며 “신뢰심과 곡진한 기대가 담긴 초청이라면 굳이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통신은 “이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현 북남(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새로운 계기점과 여건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그것은 문 대통령의 친서가 온 후에도 몇 차례나 국무위원장께서 못 오신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을 보내온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간 청와대에서 밝히지 않은 대남특사 요청 건을 북측에서 먼저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통신은 “민족 문제는 하나도 풀지 못하면서 남북 수뇌들 사이에 여전히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냄새나 피우고 저들이 주도한 신남방정책의 귀퉁이에 북남관계를 슬쩍 끼워 넣어보자는 불순한 기도를 무턱대고 따를 우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통신은 “우리와 크게 인연이 없는 복잡한 국제회의 마당에서 만나 악수나 하고 사진이나 찍는 것을 어찌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북남 수뇌분들이 두 손을 높이 맞잡은 역사적 순간에 비길 수 있겠는가”라며 “북남관계의 현 위기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똑바로 알고 통탄해도 늦은 때”라고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고 존엄은 항상 주인공이 돼야 하는데 다자회의에 나가면 들러리를 서는 꼴”이라며 “또 관철하고자 하는 핵심 의제에 집중할 수 없다는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