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바이러스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집단감염의 시작점인 신천지 구성원과 청도대남병원에 오래 머물렀던 소외계층 환자에 이어 자가격리 중이던 일반인까지 황망한 죽음을 맞았다. 사망자의 기저질환과 고령만을 탓할 수는 없다. 지역의 의료적 수용능력이 한계치에 다다랐다. 심지어 내일 또 누군가 같은 이유로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대구에서 6일 동안 머물렀던 정세균 총리는 현지 상황을 직접 보고는 ‘코로나19와의 전투’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대구 시민들이 확산 방지에 협조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사례는 계속 나온다.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지만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은 아우성이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도입부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유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건 아니다’.
독립공간은커녕 몸 누일 마땅한 공간조차 없는 사람들, 도움받을 이가 없는 유증상자가 숱하다고 한다. 열이 오르는데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체온계만 부여잡고 있다는 확진자의 불안한 소식도 들린다. 공무원·의료진은 일반 시민과 환자 앞에서는 의연하고 대범하지만 홀로 있는 공간에서 한 번씩 주저앉는다. 길어지는 비상근무에 누구든 지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어떤 이들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몰려가 대통령 탄핵 대 응원 청원숫자 경쟁에 집착한다. 감염병 명칭을 갖고 소모적 논쟁을 벌인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탄핵, 국무총리, 복지부 장관, 외교부 장관 경질 요구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국방부 장관이 “현재 준전시 상황”이라는데 한쪽에선 컨트롤타워를 이토록 흔들어댄다.
대안은 있는 건지 묻고 싶다. 당장 컨트롤타워를 휘어잡고 광속으로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전문가·지도자 집단이 있다면 그 리스트부터 먼저 자신 있게 공개해달라. 거친 비난과 비판만 쏟아내고 대책 없이 쏙 빠지는 모습은 비겁하다. 병원 문을 닫고 대구로 향한 의사·간호사, 감염병 지정병원 앞에 몰래 간식을 두고 간 이름 모를 시민, 대구를 위해 성금 모금에 나선 재외국민들은 이런 행태에 힘이 빠진다.
상황 수습이 먼저다. 잘잘못은 다가오는 선거를 통해 판단해주면 된다. 난국에 편을 갈라 입싸움만 한 정치세력 탓에 나라 꼴이 엉망이 되고, 위정자만 믿었던 백성은 억울하게 죽임당했던 비극의 역사를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 여러 번 나온 당연한 말을 지겹지만 또 한다.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다. 한 번이라도 공동의 적 앞에서 단일 대오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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