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제2 금모으기 운동' 억지 기부로 변질돼선 안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재난지원금을 받을 계획인가”라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100만 공무원들도 다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는 건가”라는 질의에는 “그건 강제할 수 없다. 공무원들은 자발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로는 자발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공무원들의 기부를 강제한 것이나 다름없다. 행정부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 다음으로 높은 부총리가 제아무리 자발성을 강조한들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공무원이 있겠는가.


3월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고통분담을 한다며 4개월간 급여 30%를 반납하기로 했다. 그러자 한국수력원자력 본부장급 이상 임원이 4개월간 급여 30%를 반납하겠다고 나서는 등 공기업으로 반납 분위기가 확산했다. 이번에도 장·차관급 이상 고위공무원부터 기부 대열에 동참하면 나머지 공무원과 공기업·민간기업 등으로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여권 일부에서는 4인 가구 기준 재난지원금 100만원에 더해 기부액을 늘리는 이른바 ‘플러스 알파 기부’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반강제적으로 내야 하는 성금처럼 재난지원금에 없는 돈마저 더 얹어 기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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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은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하면서 1998년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운동을 떠올렸을 법하다. 여권 인사들은 이번에 실업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기부를 유도하는 ‘제2의 금모으기운동’을 구상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기부 아이디어는 애초 소득 하위 70%에 주려던 것을 4·15총선 직전에 전 국민 지급으로 확대하면서 재원조달 방법이 여의치 않자 만들어낸 궁여지책이다. 자발적 동참과는 완전히 다른 강제 기부운동이다. 요즘 기업은 코로나19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기재부는 29일 “올해 4월 무역수지는 99개월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국내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2008년 12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제 앞가림하는 데도 힘이 부치는 기업들을 관제 억지 기부 캠페인에 시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정작 한시가 급한 정부의 금융지원은 더디기만 하고 오히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기부에 나서야 한다면 경제위기 극복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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