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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 제51주기 추모제 열려

12일 서울현충원서 추모제 진행···유족 및 독립운동 관련 회원 참석

운암 김성숙.   /사진제공=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운암 김성숙. /사진제공=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투쟁에 헌신한 김성숙 선생일 기리는 ‘운암 김성숙 선생 제5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국가보훈처는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 앞에서 김성숙 선생 추모제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추모식은 김성숙 선생 유족과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광복회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추모식에서는 ‘운암 김성숙 평전’이 출간된 기념으로 제단에 평전을 바치는 평전 봉정식과 평전을 작성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에게 감사패 전달식도 진행된다.


상산김씨 상산군파 32대손인 김성숙은 1898년 3월 10일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했다.



1919년 3월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지역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조선무산자동맹’과 ‘조선노동공제회’에 가입했다. 그는 1923년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고려유학생회’, ‘창일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열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김성숙은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36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했다.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취임해 내무차장 등으로 활동했다. 김성숙은 1943년 임시정부 행정부의 한 부처로 선전부가 설치됨에 따라 조소앙·신익희 등 14명과 함께 선전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광복 후에는 서울에서 근로인민당을 결성하면서 정치권에서 활동하다가 1969년 4월 12일 ‘피우정’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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