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청와대 미남불상’이라 불리는 보물 1977호 ‘석불좌상’의 쌍둥이 얼굴이 발견됐다. 청와대 안 녹지원에 있는 석불좌상의 정확한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으로 원래 경주 이거사터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이던 1913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조선 총독에게 바친 것을 계기로 서울로 옮겨졌다. 이후 1939년 현재의 청와대 위치인 경복궁에 새 총독관저가 지어지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 ‘쌍둥이’ 불상으로 지목된 것은 경주 남산 약수곡의 석조여래좌상이다. 이곳에 방치돼 온 높이 109㎝, 어깨너비 81㎝의 ‘머리없는’ 석조여래좌상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은 팔각형의 대좌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나, 방형(사각형)의 대좌가 특징이며 이 점이 바로 ‘청와대 미남불상’과의 공통점이다. 또한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오른손은 펴서 무릎 아래의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의 자세 또한 두 불상의 닮은꼴이다.
문화재청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 중인 경주 남산 석조여래좌상 절터인 약수곡 제4사지에서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의 머리 부분인 불두(佛頭)를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바로 지척에 있었으면서도 바위와 흙에 가려져 수백 년 간 분리돼 있던 불상과 불두는 수백 년 만에 온전한 형태로 복원될 전망이다. 조선과 일제시대를 거친 경주 불상의 수난사를 보여주는 사례라 특히 눈길을 끈다.
불두는 높이 50㎝, 너비 35㎝, 둘레 110㎝ 크기로 석조여래좌상 인근 큰 바위 서쪽, 즉 하대석 서쪽 땅속에 묻힌 상태였다. 발굴 당시 머리 쪽이 땅속을 향하고 얼굴은 서쪽을 바라본 상태였다. 안면 오른쪽 일부와 오른쪽 귀 일부에서는 금박이 확인됐고, 미간 사이의 백호를 장식했던 둥근 수정은 떨어진 채 함께 출토됐다. 불두 인근에서는 소형 청동탑, 소형 탄생불상 등도 나왔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불두가 불상에서 분리된 시점을 고려시대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조성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사연구3팀장은 “불두는 고려 이후 토층에서 발굴돼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불상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석조여래좌상에서 분리된 것으로 추청된다”고 설명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불두에 대해서는 통일신라 석조불상·마애불상의 개금(改金,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과 채색 여부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를 포함해 추가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경주시와 불두와 석불좌상을 복원하고, 주변도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불두는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오는 10일부터 일반인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