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보험사기 혐의로 구속된 경남 진해의 병원장 A씨의 집무실 책상에서 이상 야릇한 문구가 발견됐다.
‘보험사 돈은 눈 먼 돈. 임자 없는 돈.’
A씨에게 이 문구는 잠언과도 같았다. 그는 조직적인 보험사기를 일삼았다. 이른바 ‘나이롱 환자’ 조물주였던 그는 허위입원 기록을 조작하며 유령환자들이 보험사에서 무려 44억5,000만원을 편취하도록 도왔다. 그는 어떻게 됐을까. 사건 발생 이후 4년이 지난 현재 A씨는 여전히 자신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보험사기가 적발되고 그의 몸은 감옥에 갇혔지만 이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1심 판결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고 기약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험사기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 2016년 특별법까지 만들었지만 보험사기는 되레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기로 적발되고도 실제 처벌을 받고 보험금까지 환수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다 공·사보험 데이터 교류가 막혀 있어 보험사기범을 적발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명무실한 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16일 국회 입법조사처의 ‘2020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이슈분석’에 따르면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만들어진 2016년 보험사기 적발인원은 8만3,000여명, 피해금액은 7,185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적발인원이 9만2,000여명으로 10% 늘었고 피해금액도 8,809억원으로 22% 불어났다. 입법조사처는 “특별법 시행 5년차를 맞았지만 보험사기는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짚었다.
이유가 뭘까. 보고서는 일단 ‘솜방망이 처벌’을 꼽았다. 특별법에 의해 보험사기 적발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벌금형에 그치면서 경각심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기로 지급된 보험금을 환수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은 물론 보험업 관련자의 사기에 가중처벌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인원 중 병원 종사자는 1,233명, 자동차 정비업소 종사자는 1,071명, 보험모집종사자는 1,600명에 달하는 등 사안을 잘 아는 보험업 종사자의 범죄가 많았다. 입법조사처는 “보험업 종사자의 사기행위는 일반 보험계약자로 사기가 확산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사기를 칠 생각이 없던 일반 보험계약자도 유혹에 빠트려 전체적으로 보험사기가 만연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선량한 전체 보험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영보험과 민간보험 간 자료를 공유하는 것이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법적 근거가 부족한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하나의 보험금 지급 건을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과 민간보험이 교차해 검증하면 보험사기를 보다 정교하게 판별할 수 있는데 이 같은 협업이 안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입법조사처는 “민영보험사 보험금 누수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고 국민건강보험 등 공영보험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공·사보험 간 정보교류의 근거가 미약하다 보니 보험사기 적발의 실효성도 떨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입법조사처는 보험업 종사자가 사기를 저지르면 가중처벌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예컨대 세무사·공인회계사·변호사가 세무 관련 사기를 치면 해당 형의 2분의1을 가중하게 돼 있는데 보험사기에도 이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김진태 당시 의원이 가중처벌 규정을 반영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보험사로부터 보험사기 근절을 위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근거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울러 보험사 내 전담조직 및 조사 업무 기준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