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들이 요즘 여당의 한 보좌관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그는 사모펀드 사고를 추궁하기 위해 금융지주 회장들을 국정감사장에 반드시 출석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당사자인 은행장이나 금융투자사 사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금융사 임원들을 국회로 불러 “금융지주회사들이 회장을 위해 법률자문비 등을 마구 사용한다”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지주사 경영에 대한 12개 항목의 방대한 자료를 요구했다가 8개로 줄이자 실무진이 한숨을 돌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금융사 곳곳에서 “저승사자가 따로 없다”는 푸념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관치(官治)가 조용해질 만하니 정치(政治)가 다시 판을 친다”는 씁쓸한 현실진단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금융은 속된 말로 ‘만만한 산업’이다. 금융회사 고위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쉬운 먹잇감이다. 한때 ‘4대 천왕’으로 불리던 금융지주 회장 중 3명이 정권과 줄이 닿아 있을 정도였다. 현 정권 들어서는 금융협회장은 물론 국민연금까지 고위관료들과 낙마한 정치인의 안식처가 됐다. 과거에는 그나마 낙하산 꼬리표에 부끄러움을 알았지만 이제는 청와대 출신과 10년 전 장차관들까지 대놓고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향유한다. 퇴행적 상황을 마주하는 금융사 고위인사들의 모습은 더 한심하다. 인사철마다 투서가 난무하고 학연과 지연을 샅샅이 알아내 줄을 대느라 바쁜 모습은 도통 바뀌지 않는다. 금융인 스스로 정치 예속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라임자산운용부터 시작된 사모펀드의 연이은 사고는 정치금융이 만들어낸 금융산업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사고가 발생한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정권 실력자들이 CEO 자리를 손쉽게 거머쥐는 것을 보면서 금융사 이름을 달면 얼마든지 한탕 해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권력자 주변인들의 머리에 똬리를 튼 것이다. 옵티머스 등 화려한 이름으로 분칠한 펀드를 들고 나와 세도가의 뒷배를 이용하려는 순간 참사는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와대 인사가 펀드와 연결돼 있다는 소식에 뭉칫돈을 들고 나타나는 자산가들은 좋은 사냥 대상이었다.
후진적인 금융 수준은 이제 정치인들에게 인기를 끌어올리는 도구가 되고 있다. 차기 대권 여론조사에서 1위로 올라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금융을 파고드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다. 그가 꺼낸 ‘이자율 10% 제한론’은 빚에 신음하는 빈곤 서민층의 마음을 끄는 최적의 도구다. 제도권 내 대부업을 이용하는 178만명에게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10%로 낮춰주겠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현행 최고이자율에서도 10명 중 9명은 대출 승인이 나지 않고 이자율을 낮추는 만큼 제도권에서 밀려나 사채 시장을 찾아야 할 수 있다’는 경제학적 논리는 돈에 쪼들리는 이들에게 학자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정치금융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도 금융당국 수장의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시장의 최대 화두인 공매도 금지 연기론을 제일 먼저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지사였다. 이번에도 정치인들은 이 지사에게 바통을 이어받았고 정작 금융당국 수장의 목소리는 좀처럼 듣기 어렵다. 뉴딜펀드는 어떤가. 국가가 펀드 원금을 보장해준다는 얘기가 나오는데도 ‘자본시장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금융당국자의 발언은 발견할 수 없다. 정치에 지배되는 포퓰리즘 금융은 이렇게 무섭다.
영국의 조사 업체가 매긴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에서 서울과 부산은 각각 33위, 51위에 머물렀다. 야박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금융이 정치인들의 놀이터가 되고 복지정책의 부산물이 되는 상황에서는 이런 성적표조차 과분하다. 금융인들은 “우리의 금융 경쟁력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억지논리라며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관치보다 비린내 나는 정치금융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과도한 폄훼라는 금융인들의 외침은 공허하기만 하다. yo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