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국정농담] 이인영 北물물교환, 제재 넘어 코로나도 뚫으려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국정원에 제재 확인 안 하나" 여야 지적에

통일부 "사업 철회 아냐" 이례적 즉각 반박

李장관 "제재 대상 지적 보도 정도는 숙지"

페이스북엔 "내 마음 많이 급하고 답답하다"

北은 "자력갱생"... 외부지원 또 거부 의사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이인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 교류 재개를 위한 첫 단추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던 남북 물물교환 사업이 국제 제재 위반 여부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국가정보원이 계약 상대 중 하나인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를 제재 대상으로 확인한 가운데 통일부는 “다른 계약 상대방과는 사업을 검토 중”이라고 반박했다. 물물교환 사업에 관해 ‘백지화’ ‘철회’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자 통일부는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민간’이랄 게 존재하지 않는 북한 사회의 성격상 북한 수뇌부의 외화벌이 수단에서 자유로운, 제재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사업자가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최근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또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국경을 봉쇄한 북한이 과연 전향적 자세로 물물교환 사업에 손을 내밀지도 미지수란 분석이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 /연합뉴스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 /연합뉴스


여야 “국정원에 확인 안 하나” vs 통일부 “사업 철회 아냐”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보고 직후 기자들에게 통일부가 남북 물물교환 사업의 일환으로 승인을 검토하던 국내 민간단체와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와의 사업 계획을 철회했다고 전했다. 이날 업무보고에는 서호 통일부 차관이 출석했다.

하 의원은 “통일부가 국가정보원에 대상 기업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 같다”며 “해당 사업은 완전히 철회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통일부와 국정원의 정보 교류가 좀 원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노동당 39호실은 물론 황강댐 (무단방류) 관련 문제도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그 직후 입장문을 내고 “‘철회’라는 발언을 한 바 없다”며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는 북측 계약 상대방인 여러 기업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서 차관이 직접 업무보고 자리에 참석했음에도 국회의 반응에 따로 입장문을 낸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통일부는 “해당 기업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계약 내용 조정에 대해 협의 중”이라며 “아직 검토 중인 사안에 대해 ‘철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앞서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는 대북제재 리스트에 있는 기업”이라고 확인했다. 해당 회사가 노동당 39호실 산하 외화벌이 업체로 추정된다는 보고였다. 국정원의 이 보고는 사업을 비밀리에 조율 중이던 통일부에 한 방을 먹인 꼴이 됐다.

이인영(오른쪽) 통일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이인영(오른쪽) 통일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이인영 “제재 무시할 사람 없다”

해당 사업은 통일부가 국내 민간단체인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이 남측의 설탕과 북측의 개성고려인삼술·들쭉술을 교환하기로 계약함에 따라 이에 대한 반출입 승인을 검토하는 사업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북측의 금강산·백두산 물, 대동강 술을 남측의 쌀·약품과 맞바꾸는 방안을 남북 교착 상태를 돌파할 ‘상상력’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이후에도 각종 공식 자리에서 남북 물물교환을 남북 대화 재개로 가는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그러나 국정원의 국회 보고 이후 이 장관의 이 같은 구상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제재 여부도 모르고 그간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냐”는 비판도 곳곳에서 쏟아졌다.

이 장관은 이를 전면 반박했다. 그는 다음날인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제재 대상인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민주당 김영주 의원의 질문에 “2017년에 제재 대상이 아니냐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장관 취임 후) 결재할 수 있는 대부분은 결재를 했는데 (국내 민간단체 측이) 승인 신청한 지가 좀 됐는데도 여태까지 승인하지 않았으면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며 제재 대상 기업인데도 거래를 추진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제재 대상이라면) 그것을 무시하고 추진할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통일부 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를 제외한 북측 기업들은 제재 위반 소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회사를 뺀 다른 북한 기업들과의 교역은 승인을 계속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천적으로 다시 되돌린다거나 철회 또는 백지화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이 회사가 제재 대상일 수 있다는 문제를) 통일부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서호 통일부 차관. /연합뉴스서호 통일부 차관. /연합뉴스


“최종 결정은 통일부가 한다”


27일 통일부 당국자는 이 문제에 대해 “‘백지화’ ‘철회’ 등의 표현은 실제와 맞지 않은, 굉장히 잘못된 표현”이라며 다시 한 번 정부 입장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작은 교역’과 관련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문제 제기가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재를 모든 것의 잣대로 삼는 것은 유엔 결의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엔과 미국,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대북제재 리스트에 해당 기업이 포함되어 있는지가 1차적 판단 기준”이라며 “리스트에 없으면 (교역) 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 “정보기관도 제재 대상이라고 얘기한 적은 없고 우려가 있다고 확인한 것”이라며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 이름 자체는 대북제재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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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대북제재 대상은 ‘김정은의 외화 곳간’으로 이름난 노동당 39호실이며 그 산하 기관으로 확인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 자체는 제재 대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당국자는 “정보기관과 소통을 하면서 협의를 하는데 최종결정은 통일부가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27일로 취임 한 달을 맞았다.

/자료제공=이인영 통일부 장관 페이스북/자료제공=이인영 통일부 장관 페이스북


李장관 “내 마음 많이 급하고 답답”

남북 물물교환과 관련해서는 이인영 장관의 22일 페이스북 글도 한 차례 화제가 됐다. 이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단을 면담한 사실을 22일 페이스북에 알리면서 “최근 제 마음도 많이 급하고 답답합니다”라는 내용을 첫머리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 장관의 이 발언은 당시 언론에 공개된 발언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나온 내용이었다. 이 장관은 실제 현장에서 이보다 먼저 발언한 내용들은 페이스북 상에서는 뒤로 미뤘다.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이 함께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고 한반도의 평화 경제를 선도했던 역사적 가치, 그리고 거기에 참여했던 기업인들의 자긍심이 절대로 훼손되지 않도록 반드시 개성공단을 재개할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겠습니다” “개성공단 기업인 분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공동 번영을 이루어 가기 위해 같이 걸어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같이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등의 내용을 글 후반부에 배치했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의 이 같은 표현이 남북 물물교환 방식 교류가 난관에 빠진 상황과 관련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남북 관계가 좀체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청와대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정치인 출신 장관으로서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달 중순부터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남북 교류의 벽은 높아지고 국민적 관심은 떨어진 상황도 이 장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됐다.

김정은. /연합뉴스김정은. /연합뉴스


北은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 외부 지원 거부 의사

한편 어떻게든 교역을 성공시켜 다시 남북 간 다리를 놓겠다는 이 장관과 통일부의 강한 의지와 달리 외부 환경은 점점 악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북한은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혀 우리 정부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7일 ‘자력자강의 귀중한 성과들로 당 제8차 대회를 맞이하자’ 제목의 사설에서 “오늘의 총진군에서 최대의 적은 나약성과 남에 대한 의존심”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지금 우리는 날로 엄중해지고 있는 세계적인 보건 위기로 인하여 국경을 철통같이 봉쇄하고 적대 세력들의 악랄한 도전을 짓부수면서 혁명적 진군의 보폭을 더 크게 내디뎌야 할 조건과 환경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는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를 더욱 높이 들고 경제건설의 성과도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안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이 같은 입장은 코로나19 방역 문제 등에 있어 외부 지원 없이 자력갱생으로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됐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13일 제7기 제16차 정치국 회의에서도 수해 복구 과정에서 외부 지원을 받지 말라고 공개 지시한 바 있다.

이날 사설은 “경제건설에서 애로가 제기되면 국경 밖을 넘겨다볼 것이 아니라 국내의 생산단위, 연구단위, 개발단위와의 긴밀한 협동으로 실속있게 풀어나가는 관점을 확립하여야 한다”며 “우리 인민은 오직 자기의 힘을 믿고 자체의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당 제8차 대회를 반드시 승리자의 대회로 빛낼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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