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공영방송의 아침 라디오로, 진행자가 피아노에 앉아 음악을 이끌고 청취자들이 각자의 집에서 함께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이 프로그램은 금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 2시간 TV 프로그램으로 옮겨왔어요. 각자의 집에 앉아서 노래방 같은 자막을 보며 함께 노래하는 것이 이제는 ‘뉴노멀’이 됐기 때문이죠. 덴마크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50만 명이 금요일 밤에 함께한다는 것, 그게 중요한 지점입니다.” (얀 셀링 BBC스튜디오 노르딕 지사장)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 시장을 토대로 아시아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가족애’죠. 결국 모든 것이 가족으로 귀결된다는 것, 이 점은 사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 개념의 가족이 아닌 미드 ‘소프라노스’에 나오는 가족같은 모습이어도 상관없어요. 캐릭터와 가족 간의 교감은 누구나 좋아할 이야기인데, 아시아 작품 대부분이 이 주제를 아주 잘 다룹니다.” (넷플릭스 ‘설국열차’의 제작자 마티 아델스타인 투모로우스튜디오 대표)
코로나19의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방송영상 콘텐츠는 어떤 이야기에 주목할까? 수요자들은 또한 어떤 이야기와 어떤 볼거리를 찾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국제방송영상콘텐츠마켓 2020’(BroadCast WorldWide·BCWW)에서 이 분야 산업과 관련된 세계적 연사들이 머리를 맞댔다. 지난 2001년 첫발을 내디딘 BCWW는 코로나19로 인해 처음으로 전면 온라인개최를 택했고 ‘콘텐츠, 뉴노멀 시대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지난 7일 개막해 11일까지 열린다.
둘째 날인 8일 특별세션으로 마련된 강연은 특히 포스트 코로나와 뉴미디어 시대의 콘텐츠 경쟁력에 주목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 얀 셀링 BBC스튜디오 노르딕 지사장과 드라마·예능 등 포맷 시장의 세계적 전문가인 개리 카터가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 ‘포맷 거장들의 수다: 북유럽부터 IP까지’는 새로운 콘텐츠 수출 효자종목이 된 포맷 분야를 들여다봤다. 교육수준이 높은 북유럽은 방송분야의 치열한 경쟁과 날카로운 시청자층이 있어 새로운 포맷 시험의 장(場)이라 불릴 정도로 창의력의 중심지로 꼽힌다. 두 연사는 한국 방송콘텐츠의 스토리텔링이 서양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MBC ‘복면가왕’을 예로 들었다. 개리 카터는 “독특한 전개방식으로 감동을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복면가왕’은 무례하고 비판적인 심사위원들이 포진한 전통적 경연 프로그램과 달리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기에 특히 지금같은 시기에 ‘해독제’가 될 수 있을거라 여겨졌다”고 말했고 셀링 지사장은 “코로나가 장기화하고 종식된다 해도 ‘복면가왕’ 같은 기분좋은 요소가 중요할 것이다. 건강이 위협받는 지금 우리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뭔가를 깨달은 만큼 중요한 가치기반이 강조될 것이며 불쾌함에 기반한 프로그램은 오래 성공할 수 없고 세계 포맷시장에 활발하게 나올 수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고자세로 가르치고 지적하는 출연자보다 감동하고 칭찬과 갈채를 보내는 청중의 가치를 강조한 발언이다.
포맷산업은 특히 뜻밖의 문화적 코드를 자극할 수도 있다. 셀링 지사장은 덴마크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베이크 오프’를 예를 들어 “주부나 노년층이 타겟일 줄 알았는데 온가족이 보고 예전시즌을 찾아보는 경우도 많다”고 했고 카터는 “해당 국가에 잘 어울리고 통할 만한 포맷을 감각적, 본능적으로 찾는 게 포맷 유통의 중요한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유명한 미드 ‘프리즌브레이크’를 비롯해 넷플릭스판 ‘설국열차’를 제작했고 최근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을 리메이크한 마티 아델스타인 투모로우 스튜디오 대표는 ‘뉴노멀시대, 아시아 방송 콘텐츠 르네상스의 도래’를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인간 관계를 탁월하게 풀어내는 한국 및 아시아 콘텐츠의 장점을 강조했다. 아델스타인 대표는 “과거 영화·문학·만화 등 원작을 둔 IP기반의 작품제작이 20%였다면 지금은 50% 수준일 정도로 다들 안전한 것을 찾고 있고 특히 아시아를 주목한다다”면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고 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어야 해서 세계 곳곳을 물색하는데 한국과 아시아의 콘텐츠는 관계와 교감과 공감을 잘 풀어내기에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은 누구나 관심 기울일 이야기이며 직장에서의 가족애로도 적용할 수도 있다”면서 “애니메이션 원작의 아시아 IP 프로젝트 몇 가지를 협상 중이고, 한국의 미(美)를 다룬 책도 하나 사서 한국어와 영어가 반반인 작품 제작을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