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이동이 멈추고 있다. 이사를 할 경우 오히려 주거 사다리 아래 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4차례에 걸친 겹 규제 여파로 곳곳에서 시장 왜곡이 일어나면서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이 주거 이동을 포기하고 현재 사는 집에 머물도록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더 늦기 전에 주거 사다리에 올라타자며 ‘패닉 바잉(panic buying)’이 일어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현재 위치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꼼짝달싹 않는 ‘패닉 스테잉(panic staying)’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원하는 동네, 원하는 주택에 사는 건 점점 더 꿈 같은 일이 되고 있다.
◇ 옮기면 떨어진다 ‘패닉 스테잉’ =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월별 아파트 매매량은 전국 기준 지난 7월 10만 2,628건에서 지난 9월 5만 8,037건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서울의 경우 같은 기간 1만 6,002건에서 4,795건으로 70% 줄었다. 거래량은 줄었지만 부동산 시장 심리는 여전하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하는 부동산 시장 소비심리지수를 보면 거의 변화가 없다. 시장의 소비심리는 변함이 없는데, 가격이나 정책 등 외부요인으로 인해 거래가 줄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가격 급등은 해소하지 못한 채 양도세와 취득세, 대출제한 등 정책 요인 때문에 거래가 줄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가 주거 이동이 막히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이사를 하면 현재보다 여건이 좋은 곳으로 상향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 집보다 좋은 집은 더 비싸니까 갈 수가 없다”며 “대출도 막혀 있기 때문에 현재 주거 이동은 사실상 전세난 때문에 매수로 돌아서는 수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내 집 팔아 내 집에 못 간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전세 시장은 상황이 더 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난 19일 전세대책 브리핑’에서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면서도 “임대차 3법은 집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이룬 소중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임대차 3법이 성과라고 판단하는 근거로 “법 시행 전에 57.2%였던 전·월세 계약 갱신율이 지난달 66.2%까지 높아졌다”며 “10명 가운데 7명은 전셋값 부담 없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 전세 수요자, 어쩔 수 없이 재계약 =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계약 갱신율의 증가 자체보다 시장의 주거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부동산공학과 교수는 “원하는 집에 이사를 갈 수 있던 사람도 이사를 가면 전셋집을 구하지 못하게 돼 패닉 홀딩, 패닉 스테잉을 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패닉 스테잉 때문에 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결국 주거이동의 연쇄 고리가 차단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주거 이동을 연결해보면 한 집이 막히면 일 년 동안 연달아 10개의 주거 이동이 막히게 된다”며 “1년 단위로 봤을 때 전체 가구의 20~30%가 주거이동을 하면서 돌아가는 구조인데, 이 고리가 끊기게 되면 몇 만 가구를 공급하는 수준으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같이 주거 이동이 막히는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종의 ‘계몽’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교수는 “아파트보다 다세대 주택도 살만하다는 등 정부가 (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가치관을 강요하는 부분이 많다”며 “어떤 집에 머무를지, 한 집에 어느 정도 머무를 지 등은 정부가 선택할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에서 월세로, 아파트에서 빌라로 수요 전환을 강요하기보다 자유롭게 동적인 주거이동이 가능하도록 정책 방향을 재설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기존 주거지에서 같은 수준의 새 주거지로 이전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갈등, 거래절벽에 따른 동맥경화, 이로 인한 가격 상승 등 시장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아파트 공급이나 임대차 3법의 원상복구 등 원인에 부합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