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트랙터를 몇 마디 말로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어떤 이는 막걸리 한 잔만 걸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없이 던진 농담으로 ‘계란 테러’를 막고 잠시간의 눈맞춤으로 분노한 시위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때도 있다고 했다. 대화경찰 1기인 이동훈(42) 영등포경찰서 경위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이 경위는 ‘대화경찰’이라고 적힌 간이 조끼를 오른손에 꼭 쥔 채 나타났다. 대화경찰은 시위대와 직접 소통하며 갈등을 중재·예방하는 일을 전담하는 경찰이다. 8년 째 대화경찰로 활동 중인 이 경위는 “이 조그만 조끼 하나에 큰 의미가 담겨 있다”며 “이전까지 정보관이 사복을 입고 전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면 대화경찰은 조끼를 걸치고 시위대와의 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경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성향과 상황에 맞게 ‘맞춤형 대화’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 경위는 강조했다. 울분을 쏟아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줄곧 들어주는 것이 좋고,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실없는 농담을 던질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경위는 “시위대는 생물과 같다. 모든 시위대가 다르고, 시시각각 변화한다”며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이 경위는 자신이 가진 특유의 친화력과 ‘맞춤형 대화’로 큰 사고를 막은 경험도 있다. 2020년 1월께 정부가 중국 우한 교민을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수용하겠다고 했을 때다. 당시 아산 주민들은 감염을 걱정해 교민 수용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였다. 아산에 도착한 이 경위는 먼저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특유의 입담을 발휘하며 할머니들을 ‘빵빵’ 터트렸고 트랙터를 몰고 인재개발원을 들이받겠다고 위협한 주민과 막걸리 한 잔을 먹으며 ‘형동생’을 했다. 그 덕이었다. 이 경위는 할머니들을 통해 아산 시위대가 ‘계란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경찰의 만류에도 결국 트랙터에 시동을 건 시민은 “형님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아우’ 이 경위의 부탁에 화를 가라앉혔다.
다만 시위대와의 대화가 늘 즐거울 수는 없다. 시위대에게 심한 욕설과 모욕을 당할 때도 많다. 이 경위도 화를 참지 못하고 시위대에게 섭섭함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 경위가 현재까지 대화경찰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경위의 신념 덕이다. 이 경위는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누군가와 소통함으로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위는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대화경찰 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 덕에 제 자신도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위는 앞으로 대화경찰이 보다 전문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통의 전면에 나서는 대화경찰이 섣부른 판단을 할 경우 갈등이 오히려 심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회와 시위가 급격히 늘어나며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전국에서 일어나는 집회는 8만 6552건에 이른다. 이 경위는 “특히 자해 소동 등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날 경우 위기협상팀이 오기 전까지 초기 대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은 갖춰야 한다”며 “현재는 하루 정도의 간단한 교육만 이뤄지고 있는데, 보다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화경찰은 2018년 10월 대화경찰TF를 시작으로 올해 9월 대화경찰계 신설을 앞두며 확장하는 추세다. 대화경찰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경찰 내부의 인식도 퍼져나가고 있다. 다만 이 경위는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고 설명했다. 이 경위는 “무엇보다 전문화 교육을 위한 관련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경찰 내부 교육을 넘어서 외부 전문가들의 교육이나 갈등 상황을 전제한 시뮬레이션 교육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이에 대한 예산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