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무난한 통과' 예상했지만…'단순→일반' 보유목적 바꾼 국민연금, 미리 준비했나

■현대백화점 지주사 전환 무산

'오너 지배권한 확대' 비판 커지자

자사주 소각·현금배당 당근에도

한무쇼핑 지주사 배치에 반발 커

일부 외국계·개인 투자자 등 돌려

' 지분 8%' 국민연금 반대 결정타





“시장의 우려를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했던 분할 계획과 주주 환원 정책이 주주분들께 충분히 공감받지 못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현대백화점(069960)이 1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인적 분할 안건이 부결된 직후 낸 입장문에는 ‘시장의 우려를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말처럼 지난해 9월 지주 체제 전환을 위한 인적 분할 계획이 발표된 후부터 시장에서는 ‘오너의 지배력 강화’와 ‘주주가치 희석’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현대백화점은 주총을 앞두고 자사주 취득 후 소각·배당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주주 환원책을 발표했지만 거세지는 ‘주주가치 강화’ 움직임 속에 끝내 반대 여론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안건 통과를 저지한 반대 표의 중심에는 큰손 국민연금이 있었다. 국민연금은 이번 주총을 앞두고 현대백화점 주식 보유 목적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행동주의의 부상과 과도한 경영 간섭이 문제로 지적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섬에 따라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이번 인적 분할은 ‘지주사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위한 첫 단추였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9월 현대백화점을 신설 법인인 ㈜현대백화점홀딩스와 존속 법인인 ㈜현대백화점으로 분리하는 계획안을 밝혔다. 두 회사의 분할 비율은 홀딩스 23.24%, 현대백화점 76.76%로, 이후 백화점을 홀딩스의 자회사로 편입해 지주회사 전환을 완성할 예정이었다. 현대백화점과 한무쇼핑을 자회사로 두고 각 사가 유통업 내에서도 다른 신사업의 특화된 주체가 되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측은 “현대백화점과 한무쇼핑은 그동안 오프라인 점포 출점에 주력해왔지만 오프라인 유통의 성장 한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장기 비전을 가진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지배구조 개편으로 사업회사의 영업가치와 우량 자회사의 자산가치 반영이 가능해져 기업 및 주주가치가 증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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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비전과 달리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우려가 제기됐다. 인적 분할을 하면 현대백화점이 보유한 자사주에 신주가 배정되면서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으로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의 고수익 점포 6곳을 운영하며 연간 1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한무쇼핑이 사업회사가 아닌 지주사로 배치된 것 역시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는 보고서에서 현대백화점의 지주사 전환과 인적 분할 안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고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중앙은행의 국부펀드를 비롯한 외국계 기관·투자자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당초 시장에서는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총에서의 안건 통과를 예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우호지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8.03%)한 국민연금이 ‘복병’이었다. 이번 주총 투표에는 의결권이 있는 전체 주식 중 1578만 7252주가 참여해 1024만 2986주(64.9%)가 찬성표를 던졌는데, 여기서 최대주주(정지선 회장)를 비롯한 특수관계자 지분, 즉 우호지분 844만 3189주(2022년 상반기 기준)를 제외한 남은 표가 179만 9797표다. 남은 찬성표보다 더 많은 187만 9837주를 쥔 국민연금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다. 앞서 국민연금은 올 1월 말 현대백화점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했는데 주주 활동에 나서기 위한 절차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정관 변경과 임원의 선임 및 해임, 배당 확대 등 주주 활동에 적극 나설 경우 보유 목적을 ‘일반 투자’로 명시한다.

한편 행동주의 펀드들이 최근 기업들에 주주 환원 정책을 요구하거나 인사·배당 정책에 간섭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주주 활동 강화가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주식 보유 목적을 바꿔 주가 부양책이나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2018년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을 선언한 후 저배당 정책을 고수해온 기업들에 배당 확대를 압박해왔다. 이 과정에서 재무제표 승인을 거절하거나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안에 반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반영해왔으며 당시 요구를 받은 기업들은 국민연금을 의식해 자진해서 배당 성향을 높여왔다. 국민연금은 현대백화점의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005440)의 2대주주로 그린푸드의 배당 확대를 요구하며 2017년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2018년 공개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했다. 현대그린푸드는 2019년 배당 성향을 2배로 대폭 올린 뒤에야 중점관리기업에서 해제됐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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