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日 "디지털인재 2030년 79만명 부족" 결단…韓 40년째 '수도권 정원총량' 고수

■'인재 확보' 韓日 엇갈린 행보

"인재 못 키우면 국가 미래 절망적"

日 정원규제 풀어 디지털절벽 대비

IT기업 도쿄 몰려있어 시너지 기대

韓 '지방소멸' 막겠다며 규제 유지

"우수 학생들 수도권 아니면 안 와

반도체·배터리 학과라도 풀어달라"


일본이 ‘도쿄 도심 대학 정원 규제 해제’라는 특단의 조치를 꺼내 들었다.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디지털대전환(DX)의 핵심이 우수 인재 확보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이 디지털 관련 학과에 한해 한시적으로 정원 확대를 허용하는 융통성을 발휘한 것은 40여 년간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도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학과에 한해서라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토 고지 도요타 차기 최고경영자(CEO)가 13일 도쿄에서 도요타의 미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디지털 인재 육성을 위해 도쿄도 23구에 속한 대학의 정원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EPA연합뉴스사토 고지 도요타 차기 최고경영자(CEO)가 13일 도쿄에서 도요타의 미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디지털 인재 육성을 위해 도쿄도 23구에 속한 대학의 정원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EPA연합뉴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일본 전국에 정보기술(IT) 관련 학부 또는 학과는 137곳으로 입학 정원은 2만 1600명에 불과하다. 일본 대졸자 중 공학·자연과학 등을 포함한 이과 학위 취득자 비중은 35%로 영국(45%)은 물론 한국(42%)보다도 낮다. 반면 기업의 디지털 인력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어 2030년에는 최대 79만 명의 디지털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2018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일본의 디지털 전환이 지체될 경우 2025년부터 매년 12조 엔가량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이른바 ‘2025년 디지털 절벽’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인재가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처럼 도쿄도 23구 대학의 정원을 제한해서는 기업이 원하는 디지털 인재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부분의 IT 기업이 도쿄에 몰려 있는 만큼 이 지역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산학 협력, 인턴 실습 같은 실무 경험을 쌓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의 숫자가 일본 3대 도시권(도쿄·오사카·아이치)의 경우 평균 422곳인 반면 그 외 지역은 37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도쿄 도심 대학이 우수한 학생 유치에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일본은 지방의 과도한 인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디지털 관련 학과에 한해서만 정원 규제를 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규제를 다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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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보다 지방 소멸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일본 정부가 규제 시행 이후 6년 만에 대학 정원 정책을 수정하기로 한 것은 한국 상황과 대조적이다. 국내 역시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수도권 대학의 총정원을 제한하고 있어 수도권 대학들이 첨단 인재 양성에 더욱 힘을 쏟고 싶어도 정원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이에 완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법 개정이 필요한 데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우려한 지방대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윤석열 정부 역시 지난해 반도체 등 첨단 인재 양성 드라이브를 걸면서 수도권정비법을 손대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야당과 지역 대학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대신 대학 설립·운영의 4대 요건을 개편하는 등 학과 신·증설 규제를 완화하는 ‘우회로’를 택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에도 양향자 의원이 최초 발의할 때는 있었던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증원 내용이 삭제됐다.

문제는 첨단 학과의 경우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간 수험생 선호도 차이가 큰 탓에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풀지 않고서는 ‘인재 확보’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실제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전국 반도체학과 경쟁률을 분석한 결과 서울·수도권 대학 경쟁률이 비수도권 대학보다 높았다. 더욱이 비수도권 대학의 경우 상당수 학교가 교수나 실험·실습 기자재를 확보할 여력도 부족해 마냥 증원을 하거나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우수 인재들이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도 국내는 물론 해외 인재조차 수도권이 아니면 한국에 정착하지 않는다며 대학 정원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과 같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인재 쟁탈전에서 한 번 뒤처지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판단에서다. 김기남 삼성전자 SAIT(옛 종합기술원) 회장은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헌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우수한 인력을 통해 만들어진 최첨단 기술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며 “솔직히 저희도 계약학과도 만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현재 예상으로는 2031년 학·석·박사 기준으로 총 5만 4000명 수준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우수 인재 육성, 정부의 반도체 생태계 강화 노력, 미래 기술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영 기자·윤경환 기자·신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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