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자영업 대출 1064조 '사상 최대'…'빚내서 빚갚기'도 한계 달했다

◆코로나 취약층 지원 연장

개인연체채권 펀드 6개월 연장

신속채무조정특례도 1년 늘려

다중채무 대출비중 70% 넘겨

연체율도 9년6개월만에 최고

'부실 늪' 불보듯…특단책 필요





금융 당국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임시로 도입했던 취약 계층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내년에도 이어가기로 했다. 팬데믹 종료 이후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소상공인을 비롯한 취약 계층이 빚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국 불안으로 내수 침체가 극심한 가운데 내년에도 경기 회복이 불투명하다 보니 한시 조치를 종료할 경우 여전히 빚 부담을 떨치지 못한 자영업자 등이 불법 추심 등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반영됐다.

금융위원회는 29일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신청 기한을 이달 말에서 내년 6월로 6개월 연장하고 신속채무조정 특례 운영 기한도 이달 말에서 내년 말로 1년 연장하기로 했다. 개인연계채권 매입펀드는 2020년, 신속채무조정 특례는 2022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됐지만 수차례 연장 시행되고 있다.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연체가 급속히 늘자 대부 업체 등의 과도한 추심을 방지하기 위해 조성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펀드를 통해 연체 채권을 매입해 추심을 유보하고 연체이자도 면제해준다. 당국은 애초 2020년 한 해만 펀드를 운용할 계획이었는데 이번까지 신청 기한을 여섯 차례나 조정하며 5년 넘게 펀드를 가동하게 됐다. 신속채무조정 특례는 연체 전 혹은 연체 30일 이내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선제적으로 이자를 감면하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했던 2022년 9월 1년 한시로 도입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 장기화로 두 차례 연장되면서 예정 기한을 훌쩍 넘겨 운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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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이 코로나19 때 임시로 도입했던 금융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한 ‘응급 처방’을 내년에도 이어가기로 한 것은 팬데믹 종료 후에도 여전히 자금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는 내수 경기에 직접 영향을 받는 터라 상환 능력이 갈수록 더 떨어지고 있다. 금융위도 이번 연장 대책을 내놓으며 “최근까지 고금리·고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내수 회복 지연 등으로 연체 채무자의 채무 조정 수요, 불법 사금융 피해 우려 등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올 3분기 기준 1064조 4000억 원까지 치솟았다. 2012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규모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4분기만 하더라도 소폭 줄며 급증세가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하면서 올 들어 매 분기 0.4%가량 늘고 있다.

대출의 질 역시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중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3분기 말 총 18조 1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직전 분기(15조 9000억 원)보다 2조 2000억 원 더 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연체율은 3분기 기준 1.70%로 2015년 1분기(2.05%)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금융권에서는 대출금을 연체한 자영업자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자영업자 중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은 3분기 기준 754조 4000억 원으로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70.5%에 달하기 때문이다. 다중채무자는 추가 대출이나 돌려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경기가 살아나 소득이 늘지 않는다면 연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당국은 올 10월에도 자영업자 등에 최대 4000만 원까지 빌려주는 ‘소상공인 위탁보증’ 대출의 상환 시점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기도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코로나19 진정 시점에 맞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상환이 이뤄져야 하지만 자영업자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만기를 대폭 늦춰준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증요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내년에도 경기가 부진할 우려가 큰 만큼 내수 진작을 위한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 또한 계속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소상공인 지원책은 대출금리 인하나 채무 조정을 통한 원금 탕감에 국한된 면이 있다”면서 “소상공인의 매출이 늘어날 수 있도록 영세 사업자 매장에서 신용카드를 많이 쓰면 연말 소득공제율을 상향 조정해주는 식의 소비 진작책이 필요할 때”라고 짚었다.


김우보 기자·신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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