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맞아 노사화합이 국난극복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인식아래 탄생한 노사정위가 깨질 위기를 맞고 있다. 민노총의 탈퇴 및 한국노총의 조건부 탈퇴에 이어 16일 재계측 당사자인 경영자총협회가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나섰다.특히 정부가 조만간 노사정위를 법적 기구로 만들려고 하는 판국에 당사자인 노동계와 재계가 노사정위의 필요성을 부정한데다 민주노총이 19일 지하철노조 파업을 시작으로 4~5월 총력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올해 노사관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재계의 탈퇴=재계의 노사정위원회 탈퇴는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정부가 노조측에 양보하려는데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히 노조측을 겨냥한 것이라기 보다는 균형감각을 잃고 있는 정부측에 대한 반발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16일 주요그룹 노무담당 임원회의를 주재했던 조남홍(趙南弘) 경총부회장은 『노동계의 노사정위 탈퇴 위협에 정부가 굴복한 것은 그동안 노사정위 협의에 성실히 임해온 재계를 허수아비로 전락시키는 꼴』이라며 『이미 결론은 다 나온 상황에서 노사정위에 무엇때문에 참가하느냐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방적으로 노조측에 끌려만 다니는 정부측의 무원칙한 대응태도에 재계가 더이상 들러리를 설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여당은 조건부 노사정위 탈퇴를 선언한 한국노총을 노사정위로 복귀시키기 위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처벌규정을 삭제키로 방침을 정한데 이어 최근에는 노사정위에 없는 강제표결 규정 도입도 강행키로 했다.
이렇게 되자 재계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의는 또 노조측에 대해서는 전임자 임금 지급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계는 그동안 복수노조 허용, 제3자 개입금지조항 폐지, 정치활동 허용 등 주요한 사안을 모두 양보했으나 전임자 임금문제 만큼은 결코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장일치 가결이라는 「격렬」했던 회의분위기도 재계의 이같은 의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노무담당 임원회의는 그동안 부장급 정도가 대신 참석하는 비율이 높았으나 이날 회의에는 상무급 이상 담당임원들이 전원 참석했다.
재계는 하지만 여운을 남겨놓고 있다. 재계는 이날 탈퇴를 결의했지만 『노·정간 합의 내용을 철회하고 노사정위 안에서 3자가 다시 함께 대화를 한다면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지금은 노사정위가 사실상 공전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와 재계가 당분간 냉각기를 갖더라도 아직 최종 탈퇴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