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에비, 전화요금

이재권(산업부 차장)우리나라 사람들의 통신이용 의식은 정말 희한하다. 휴대폰 이용건수중 44%가 건물 안에서 이뤄진다. 건물 내라면 이리저리 둘러봐도 눈에 띄는게 전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휴대폰 통화 10번중 4번 이상을 건물 내에서 한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휴대폰 거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공중전화 3분이면 50원이다. 휴대폰 3분이면 180원 정도다. 그런데도 공중전화를 코 앞에 두고 3배 이상 비싼 휴대폰을 건다. 요금이 3~4배 비싼 휴대폰을 그처럼 애용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신요금에 전혀 개의치 않아서일까. 휴대폰의 우위에 따라 전화의 퇴조라는 시장기능이 나타나는 것일까. 각도를 달리 해서 보면, 「전화의 퇴조」는 깊은 우려를 낳게 한다. 전화의 퇴조는 사람의 노화(老化)처럼 자연스런 일이 아니다. 전화는 전화망이라는 척추(脊椎)의 말초(末梢)다. 척추가 튼실한데 말초가 허약할 리 없다. 전화가 밀려나고 있다면 한국의 전화망이 그만큼 퇴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화망은 눈앞에 다가온 21세기엔 「전화망」이 아니다. 정보화가, 정보사회가 바로 전화망을 통해 실현된다. 온국민이 인터넷을 쓰고, 기업이 경쟁국 기업을 제치고 수출계약을 따내는 일도 전화망의 속도와 용량이 좌우한다. 전화망은 국가사회의 거대한 정보화 인프라로 시급히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전화망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안돼 있다. 반전자교환기에 연결된 전화회선이 무려 800만이다. 전전자식이 서울역이라면, 반전자는 시골역이다. 시골역에 수천명이 한꺼번에 몰리면 대책이 없다. 전국 전화시설의 40%가 빠른 인터넷, 첨단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전화는 휴대폰의 공세에 속절없이 밀려나는 무력함을 보이고 있다. 국내업체 끼리의 경쟁에서도 그랬다. 외국의 거대 통신업체가 밀려온다면 결과는 뻔하다. 브리티시 텔레콤(BT), 벨 캐나다(BC), 일본의 NTT 등 세계 통신시장을 주무르는 거인들은 이미 몰려와 있다. 여기서 일제 강점기 우리가 통신의 주권(主權)을 박탈당했던 경험을 떠 올리는게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전화망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당사자인 한국통신은 올해 적자로 반전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퇴직금 줄 돈도 없어서 사채까지 끌어쓰고 있다. 지금 한국통신의 금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전화요금으로 귀착된다. 현재 한통이 받고 있는 수익구조로는 도저히 인프라투자 재원을 만들기 어렵다. 우리 시내전화요금은 3분 45원이다. 미국은 127원, 영국 192원, 일본 105원이다. 지난해 한통의 시내전화사업 수익은 3조8,992억원, 비용은 4조5,243억원, 적자가 6,251억원, 원가 보상률이 86.2%에 머물렀다. 지난 90년의 전화요금을 100이라면 98년엔 56.3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전기요금 135.1 수도요금 208.9 교통요금 204.1 등 모두 큰 폭으로 올랐다. 즉, 전화요금은 원가보상률에 못미치는 적자구조인데다 그동안 요금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통 사람들은 「전화요금」 얘기만 나오면 무서워서 벌벌 떤다. 공공연히 얘기를 못하도록 쉬쉬한다. 피해의식 때문이다. 전화요금 얘기만 꺼내면 정치권, 물가당국, 시민단체, 언론이 죄다 나서서 집단공격을 반복해서 가했던 기억 때문이다. 다른 공공요금은 잘도 오르고, 생필품값도 많이 올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화요금만은 마치 「금기」처럼 다뤄졌다. 그 때문에 한통은 인프라 재원 조달의 정답을 알면서도 감히 말을 못꺼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어이없게도 『한통의 로비 파워(LOBBY POWER)가 떨어져서…』라고 말꼬리를 내린다. 하지만 그의 말은 논리를 힘이 억눌러온 우리 현실에선 진실일지도 모른다. 정보인프라 구축은 안해도 될 문제가 아니다. 한통에 로비 파워를 기르라고 주문해야 한다면 기막히고도 한심한 일이다. 각계가 전화요금문제에 대해 『에비!』라고만 할 일이 아니다. 모두가 눈 뜨고 공론화해야 할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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