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데스크칼럼] 시장만들기의 다음과제

얼마전 한국보험학회가 개최한 「생명보험회사 상장에 관한 쟁점」토론회는 여러면에서 특이했다. 우선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몇달새 두번씩이나 토론회를 갖게 된 배경도 그랬다. 압축하면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생보사 상장안에 전문가집단인 학회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게 학회장의 설명이었다. 생보사 상장문제가 처음 거론된 지난 90년이후 줄곧 전문가 집단으로서 역할을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다소 강경한 어조속에는 생보사 상장문제가 보험산업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와 불쾌감이 뒤섞여 있는 듯 했다. 공청회나 토론회의 주최기관에 따라 업계편이니 정부편이니 하는 시중의 편가르기식 시각과 관련해 「학자적 양심」을 강조한 것도 인상에 남는 대목이었다. 토론회 내용면에서도 특이점은 발견된다. 어느 원로 교수는 특정 쟁점을 놓고 『이런 문제가 논란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며 더이상 거론하지도 말라』며 타이르듯 입장을 밝혔다. 다른 교수 한분은 『다같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서도 사안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분개하기도 했다. 생보사 상장문제를 다루는 기관이나 또는 전문가들의 편을 들거나 입장을 놓고 시시비비를 따질 생각은 없다. 정부 또는 전문가 집단간에도 다같은 경제 또는 기업문제를 다루는 인식과 시각이 얼마나 틀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를 든 것 뿐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직후 재벌개혁을 포함한 광범위한 개혁작업이 시작될 때 「시장이 없기 때문에 시장을 만들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오랜기간 정부주도의 개발연대 를 거치면서 누적된 관치관행과 대기업의 독과점적인 지위 등에 비추어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발상이란 평가를 받았다. 꼭 이런 시각을 따랐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추구하는 국민의 정부는 시장에서 개발연대의 잔재를 걷어내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이제 무턱대고 은행돈을 끌어다 덩치를 키우려는 기업가도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 시장의 기능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이나 퇴출장벽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지대추구의 온상이 돼온 보호나 규제가 허물어지면서 시장참여자 면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올 한햇동안 이뤄진 외국인직접투자만도 150억달러를 넘는다. 외환위기이후 외국인투자가들로선 저렴하게 한국자산을 사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투자가들의 신뢰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개혁의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보사 상장을 둘러싼 전문가그룹의 반발은 거시적 성과가 반드시 「시장 만들기」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인상을 준다. 쟁점중에는 주식회사제도나 사유재산권 등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현저한 인식차가 깔려 있다. 실증법이나 여론문제, 기업과 산업의 미래, 시장규율 등에 대한 인식에도 상당한 격차가 있어 보인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룰 못지않게 시장의 선택에 승복하는 시장규율에 대한 훈련이다. 선거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는 정치논리나 집단이기주의, 노사갈등도 따지고 보면 시장규율이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은데서 비롯되는 현상들이다. 개혁과정에서 일고 있는 신관치 논란도 시장 만들기의 성과를 반감시킬 가능성이 크다.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총리는 별명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오직 이 길 밖에 없다(THERE IS NO ALTRNATIVES)」는 뜻의 TINA는 그녀가 시장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상징하는 별명이다. 대처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의 혼란속에서도 별명 그대로 일관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시장에도 여러 형태가 있고 자본주의도 앵글로색슨 형과 라인 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작위적인 규제가 적을수록,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수록 좋은 시장이라는 사실은 신경제로 불리는 미국의 장기호황에서 입증된다. 미카엘 보스킨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국경제 부활의 요인으로「기본적인 규율의 틀속에서 민간부문이 자유롭게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을 꼽는다. 특히 경제를 부활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해낸 것은 결코 대통령이나 의회가 아니었다는 그의 지적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국민의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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