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14일] <1242> 러셀의 '특종'


1854년 11월14일,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더 타임스에 실린 ‘경기병 대대의 돌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이라는 기사 때문이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크리미아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일부가 참패했다는 기사를 영국인들은 믿지 못했다. ‘승전을 거듭하고 있다’던 군의 공식발표는 거짓이었다는 말인가. 그랬다. 기사가 나오기 열흘 전인 10월25일, 흑해 연안 세바스토폴 인근 발라클라바에서 600여명의 영국군 경기병대대가 23배가 넘는 러시아군을 향해 돌진을 감행해 불과 10분 만에 345명의 인명손실을 내고 패주했다. 무모한 돌격의 원인은 지휘부의 무능과 반목, 상황판단 미숙과 명령 전달체계의 혼선. 언론사가 자비를 들여 전장에 내보낸 최초의 기자로 꼽히는 윌리엄 러셀(William H Russell)은 현장에서 이 같은 혼선과 참패를 정확하게 취재하고 군이 독점한 통신망을 피해 특종기사를 내보냈다. 러셀 특파원의 특종은 영국 사회의 뿌리부터 흔들었다. 당장 토리당의 애버딘 내각이 무너졌다. 귀족가문의 자제들이 군의 요직을 차지하던 영국 군대에서 장교를 능력 위주로 선발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허례허식이 무너진 자리를 실용주의가 대신해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다져진 사회를 고도화할 수 있었다. 진실을 밝히는 특종기사 하나가 거대 영국을 변화시킨 셈이다. 최초의 본격 종군기자 러셀의 특종으로부터 154년이 지난 오늘날의 세계는 과거보다 나을까. 걸프전쟁에서 미군이 임베드 프로그램(embed program)으로 기자들의 자유취재를 막은 결과 비판보도는 사라졌지만 미국은 1조달러의 전비를 퍼부으며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불편한 진실’을 막으려는 시도는 발전을 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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