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팀의 수사가 1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특검팀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임동원 전 청와대 외교안보통일 특보를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데 이어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특검사무실 문을 여는 등 본격 업무를 위한 준비작업을 마쳤다. 특검팀은 앞으로 최장 120일 동안 북한에 송금된 5억달러의 자금마련 경위와 대북 송금경로, 남북정상회담의 대가성 여부 등에 대한 진실규명에 나서게 된다. 이번 수사는 현대상선이라는 하나의 기업차원을 넘어 국민의 정부 최고위층ㆍ북한과도 연관이 돼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돼 과거 어느 특검보다도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특검을 바라보는 검찰의 심정은 착잡하다. 당초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지검 형사9부 소속 검사들은 검찰이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당연히 검찰은 허탈한 심정을 보이고 있다. “이젠 특검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한 검찰 간부의 말은 검찰의 현재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사태가 특검으로까지 간 것은 검찰의 업보 때문이다. 과거 검찰은 부실수사와 눈치보기 수사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의 경우 진실을 파헤치기 보다는 정치권과 권력의 의중을 먼저 살피는 잘못된 습성이 관행화됐고 이 때문에 검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기존 검찰 수뇌부를 못믿겠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 사건이다. `나라종금의 대주주였던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측이 나라종금 퇴출을 막기 위해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ㆍ염동연씨에게 2억5,000만원을 줬다`는 의혹이 지난해부터 줄곧 제기됐지만 검찰은 지난달말 공적자금 비리 수사 발표때까지만 해도 “김 전회장이 계속 함구하고 있어서 수사를 할 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측은 최근 “지난해 7월 검찰조사 때 돈을 준 사실을 대략 시인했고 지난달 중순 노 대통령이 수사를 촉구한 이후 자초지종을 검찰에 진술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대통령 최측근의 금품수수 사실을 알고도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정치적인 사건과 비정치적인 사건을 구별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이 존재하는 한 특검은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 돼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회복되고 검찰이 바라는 대로 `특검없는 세상`도 올 것이다.
<오철수(사회부 차장)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