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 맛의 비밀은 장독이라는 데….' 모 방송국의 한 TV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 장독이 쉼을 쉬고 있는 것을 생생하게 다룬 적이 있다. 장독의 뚜껑 부위에 달라 붙어야 할 벌들이 장독 중간의 몸체에 달라 붙어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 장독에 숨겨져 있는 과학적인 원리를 눈으로 확인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장독은 그 파편을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수많은 기공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독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흙은 입자 크기가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굽는 과정에서 이 불규칙한 입자들이 아주 작은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숨구멍들은 공기는 투과하지만 물이나 그 밖의 내용물들은 통과시키지 않는다. 때문에 독 안에 김치나 기타 발효 음식들을 넣어 저장해 두면 독 바깥에서 신선한 산소들이 끊임없이 공급돼 발효 작용을 돕는다. 공기 순환 역시 원활하게 이루어져 음식의 신선도가 오래 유지된다. 장독의 숨구멍들이 생기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옹기를 굽는 동안 온도가 섭씨 800도 이상이 되면 '루사이트 현상'이 나타난다. 루사이트는 백류석이라고도 부르는 일종의 화산암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화산의 용암이 굳은 곳 등에서 볼 수 있다. 장독이 구워지는 동안 재료인 고령토가 이 루사이트로 변하게 되는데 이때 광물의 결정 구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결정수들이 빠져나가면서 미세한 공간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 이 기공들은 공기는 통과하지만 물은 투과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스펀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장독이 제 구실을 재료가 되는 흙부터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것은 겉에 바르는 유약이다. 전통적인 천연 유약을 쓴 재래식 장독을 최상품(上品)으로 치는데, 여기서 천연 유약이란 솔가루나 콩깍지 등에다가 특수한 약토를 섞어 두 달 이상 삭힌 뒤 앙금을 내린 잿물이다. 흔히 '조선 유약'으로도 불린다. 요즘에는 광명단이라는 일종의 중금속성 유약을 발라서 저온에서 구워내는 장독이 많은데, 여기엔 납 성분이 많이 포함돼 겉보기에는 마치 도자기처럼 반들반들하게 검은 광택이 나지만 사실은 숨구멍이 막혀 있는 것이다. 코팅된 유약이 장독 바깥 표면을 완전히 막기 때문이다. 이런 장독은 유약의 중금속 성분이 발효되던 산성 식품에 녹아 배어들어 우리 몸에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을 담가도 숙성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천연황토에다 조선유약을 발라 섭씨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 낸 항아리야말로 바로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원조 장독이다. 장독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중부 이북 지방의 장독은 대체로 입이 크고 배가 홀쭉하며 키는 큰 편이다. 반면 남부지방의 독은 배가 나온 대신 입은 작다. 이는 일조량의 차이를 감안한 구조로서, 남부는 중부에 비해 기온도 높고 일조량이 많으므로 수분 증발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입을 작게 만드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만의 전통 음식들 중에는 발효식품의 비중이 매우 높다. 각종 김치와 젓갈에다 된장, 식초, 그리고 막걸리 같은 발효주도 있다. 이들 발효 식품들은 장독이라는 고유의 용기가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흔한 항아리 하나에도 고도의 과학적 지혜가 깃들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