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독서] 한젬마 수필집 '그림읽어 주는 여자'

그림들이 사람에게 걸어오는 이야기다. 그림을 친구로 삼은 한젬마(29)는 이런 속삭임을 들으며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한 한젬마는 지금 국내최초로 미술전문 MC로 각 방송사에서 활동중이다. 그녀가 「그림읽어 주는 여자」(명진출판 펴냄)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피카소는 『그림은 거실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적을 공격하고 수비하기 위한 무기다』고 말했다. 그림의 본질은 사람의 감성과 이성을 자극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한젬마는 다소 통속적인 테마로 글을 시작한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될 때 당신은 어떤 그림을 보여줄 것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림이 그것을 대신해줄 수는 없을까. 저자는 제1장의 제목을 「나는 당신의 그림이고 싶다」 라고 붙혔다. 저자는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도윤희의 「BEING SWAMP」를 보여주고, 좋아한다는 말 대신에 김성호의 「가을의 복병」을 건네주고 싶어한다. 도윤희의 그림은 숲과 늪의 그 고요한 성장과정을 심오하게 담아내고, 김성호가 돌가루를 빻아 색채를 얻어 갈대숲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남녀의 모습를 드러낸 그림은 솔직히 엉큼하면서도 앙증맞다. 구스타프 클립트의 「키스」라는 작품을 보자. 노랗고 엷게 푸른 색감을 바탕에 깔고 한 남자가 예쁘게 눈을 감은 여인의 볼에 키스를 한다. 여인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고, 남자에게 편안하게 얼굴을 맡긴 구도가 편안하다. 한젬마는 이 그림에서 남편에 몸과 마음을 맡긴 자신의 모습을 연상한다. 제2장의 제목은 「이 그림을 보면 살 맛이 난다」. 제목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선전 포스터에 용기를 얻는 그런 어리석고 단조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밋밋한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 상상력에 도움을 청할 일이다. 한젬마는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 산맥 위의 성」이라는 그림을 보고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마치 다른 세상을 보고 돌아온 사람같다. 공기가 없는 세상, 인간과 동물이 한 몸으로 엉켜 있는 세상, 공간과 시간이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 세상.그는 현실의 소재로 비현실적인 배치를 즐긴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바다 위에 돌산을 띄우고 다시 그 위에 성을 쌓았다. 전도된 현실은 작가의 상상력이 무척 자유롭다는 것을 말해준다. 졸고 있는 부자의 모습을 담은 박순철의 「부전자전」을 보고 저자는 『일상이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웃음.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 당신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3장 「그림 세계와의 경쾌한 연애」에서 저자는 그림에 대한 전문용어나 개념들을 떠올릴 필요없이 그림을 둘러싼 사회, 그림을 둘러싼 화가와 관객의 관계를 플어낸다. 어떻게 한 사회가 한 미술사조를 탄생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화가의 작업으로 이어지는지를 흥미롭게 알려준다. 한젬마의 「그림읽어주는 여자」는 그림이라는 예술 양식(樣式)을 바로 일용할 정신적인 양식(糧食)으로 전이시켜주는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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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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