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元(도서출판 삶과꿈 대표)『사는 것은 좋은데 파는 것은 싫다』어느 대기업 오너한테 무심코 들은 말이다. 무얼 살 때는 조금 비싼 듯해도 괜찮으나 팔 때는 제값을 다 받았다고해도 서운하다는 것이었다. 대기업 오너가 아니라도 누구나 느끼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그동안의 개발경제 속에서 늘상 인플레이션을 의식하며 살아온 사람들로서는 무엇이건 사는 것에 집착한다. 땅도 사고 집도 사고, 회사도 사고 공장도 사고, 돈을 많이 융통할 수 있는 대기업일수록 신나게 사들였다. 한동안은 무얼 샀다는 자기과시의 자랑만 주변에서 들어야 했다. 저마다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모두 사들이는 일에 익숙했다. 빚을 지더라도 사기만 하면 돈을 벌었고 또 규모가 커졌다.
이러한 관행(慣行)에서 판다는 생각은 아예 갖지 못했다. 장사는 잘 사고 잘파는 것이라고 말로는 하면서도 자기 자산에 관한 한 팔면 망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사는 것에는 익숙하고 파는 것에는 서툴렀다.
IMF사태후 기업구조조정이 잘 안된다고 하는 것은, 특히 큰 재벌일수록 더디다고 지적되는 것은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이 얽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팔려는 마인드 없이 팔면 뺏긴다는 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은행에서 빚 독촉을 하고 정부가 압력을 넣어도 오너의 마인드가 팔겠다고 돌아서지 않는 한 미적미적댈 뿐인 것이다. 무엇이건 판다고 큰소리 치지만 막상 흥정에 들어가면 뻑뻑하고 일방적으로 온갖 조건 다 붙여 진전이 잘 안 되는 것이 상례(常例)라고 외국기업을 돕는 변호사들은 불평한다.
그런데 근래 재계(財界)에서는 일찍이 훌훌 털고 다시 알차게 시작한 대기업들이 잘 돌아가고 이익도 많이 낸다는 얘기다. 문전옥답(門前沃沓)같은 것들을 헐값에 처분할 때는 마음이 아팠으나 요즘은 오히려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다는 칭찬을 듣는다고 한다.
일본의 경영명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辛之助)회장이 생전에 교외(郊外)로 나가는 차 속에서 그의 비서에게『이 근방은 전부 내 땅일쎄, 지금 가는 요리집도 내 것이고』하고 말한 일이 있다. 놀라 얼떨떨해 하는 비서에게 소리내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은 내 것이 아니야.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커지고 유쾌해지지 않는가. 내가 바빠 관리할 수 없으니까 누군가에 돌봐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지. 호텔이나 음식점에도 맛있게 잘해 주느라 수고했으니 고맙다는 내 인사로 돈을 좀 준다는 것이라면 즐겁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