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4> A타입 인간

적대·분노속에 사는 사람들… '홧김에 사고' 많아 안타까워



샌프란시스코의 외과 의사였던 프리드만은 A타입 인간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Anger, 즉 분노라는 단어의 첫 글자인 A를 사용한데서 보듯이 이는 분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사람들은 성격이 조급하고 경쟁적이며 항상 서두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화도 잘 내고 적대적이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분노라 하지 않고 불같은 성격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 번씩 불같이 화를 내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 사회에 이러한 A타입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서울남부검찰청에서 검찰 시보를 할 때니까 꽤 오래 전의 일이다. 한 피의자가 긴급체포돼 왔는데 죄명만으로 보아서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공용서류손상,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그러나 그 사건의 전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피의자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불법유턴을 일삼다가 여러 번 ‘딱지’를 끊겼지만, 약간의 편리함 때문에 여전히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불법유턴을 감행하다가 적발이 됐다. 그런데 그 일이 있기 얼마 전부터 범칙금이 인상된 것이 문제였다. 평소 4만원씩 성실하게 납부하던(?) 피의자는 6만원으로 오른 범칙금에 승복할 수 없다고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였다. 서로 고성이 오가다가 피의자는 경찰관이 제시하는 범칙금고지서를 찢어버리고는 무작정 차를 출발하려고 했다. 경찰관은 피의자의 차량 앞을 막아 섰고, 피의자가 위협하듯 몇 번 운행을 시도하는 와중에 경찰관의 무릎을 2, 3회 정도 가볍게 부딪힌 것이었다. 좀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아무리 범칙금이 올랐다 해도 6만원을 내면 되지 뭣 때문에 사건을 크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피의자 왈, “할 말 없습니다. 아 글쎄, 제가 좀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괜히 손해본다고 생각하니 홧김에 일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그 피의자는 경찰관에게 백배사죄하고 치료비 등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고, 검찰에서 벌금형으로 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나중에 합의금, 벌금 등을 모두 더하여 보니 600만원이 족히 넘었다. 범칙금 6만원이면 끝날 일이 그 ‘홧김에’ 그만 100배나 넘는 큰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판사로서 형사사건을 처리하면서 상당수의 폭력행위 사건들이 ‘홧김에’ 저질러지는 것을 보았다. 횡단보도에 같이 서 있다가 째려보았다는 이유로 화가 나서, 길을 지나다가 어깨를 부딪치고는 사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가 나서,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다가 오뎅 국물을 잘 안 준다는 이유로 화가 나서, 주차문제로 시비하는 중에 욕을 듣고는 화가 나서, 평소 자신을 무시하고 막 대한다는 이유로 화가 나서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홧김에’, 아니면 ‘욱’하는 마음에 사고를 치지만 그로 인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다. 금전적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나 피해자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아들이 맞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홧김에’ 보복폭행에 직접 손을 댔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모 기업의 회장도 있지 않은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이웃과 어울려 음주가무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남을 배려하고 돌아볼 줄 하는 홍익인간의 자손들이 언제인가부터 각박한 마음에 화병을 안고 살아가고 홧김에 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앞으로 재판을 하면서 적어도 홧김에, 또는 욱하는 마음에 저지른 사건들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 이 글은 본지 홈페이지(hankooki.com) 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seoul.scourt.go.kr) ‘법원칼럼’을 통해서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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