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로 한국 관련 행사의 진행을 맡았던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대우사태 파급영향은 지금까지 단일기업 부도 규모로 최대 액수를 기록한 잉글리시 채널의 서너배에 달한다』며 대우사태의 심각성을 직설적으로 꼬집었다. 잉글리시 채널은 70년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잇는 수중터널 공사로, 공사를 맡은 프랑스 기업이 부도를 내면서 단일기업 부도로는 사상최대 액수를 기록했던 사건.하지만 이같은 우려에 대한 정부측 답변은 천편일률이었다. 시장원리에 맞춰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는 알맹이없는 답변이 반복됐다. 회의를 주재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우사태에 대한 해외의 시각이 국내에서 우려한 것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오히려 별 문제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회의석상을 나서는 외국투자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미국계 은행 임원이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영국과 프랑스가 잉글리시채널 부도에 따른 파급을 해결하는데 15년이 걸렸다』며 『한국 정부가 부도 규모가 더 큰 대우그룹을 무슨 수로 수개월 내에 처리하겠다고 장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기관 관계자는 『대우사태에 대한 불안감으로 한국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며 『국내시장에서조차 정부방침을 미더워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책집행 차원에서 대우처리에 대해 낙관론을 견지해야 하는 정부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뚜렷한 근거와 논리도 없이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식의 낙관론을 내세우는 정부의 태도는 외국투자자들의 불신만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하다. 대우처리를 위한 정부의 소신이 자칫 양치기 소년의 우화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종석 정경부기자/JS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