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9월 5일] '중화문명탐원공정' 대응책을

최근 중국 최대의 포탈인 신화망(8월19일)과 이를 국내에 소개한 연합뉴스(8월28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에 대한 세부과제에 돌입했다. 우리가 동북공정을 고구려 역사를 빼앗아가려는 ‘고구려공정’쯤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이 몸통에 해당하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이 지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이미 기본적 이론을 마련한 중국은 8월부터 세부과제에 들어간 것이다. 동북아시아 상고사에 미칠 파장이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의 반응이 별로 없다. 중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하상주단대공정→중화문명탐원공정→동북공정→요하문명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프로젝트를 의미하는 중국어)들은 단순한 역사공정이 아니다. 이런 공정들은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들은 고대로부터 모두 중화민족이고 그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을 바탕으로 ‘대(大) 중화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중국의 국가 전략의 일부분이다. 2003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중국문명의 시원ㆍ형성과정ㆍ발전단계 등을 연구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이론적인 기초를 마련한 중국에서는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60여일 동안 츠펑시 오한치 경내의 교래하 유역의 신석기ㆍ청동기 유적지 160여 곳에 대한 사전조사를 이미 마쳤다. 8월부터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세부과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세부과제를 이끄는 주역은 홍콩 중문(中文)대학 교수이자 중국고고예술연구중심 주임인 등총 교수와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내몽고공작대 대장 류궈샹 교수, 적봉학원 홍산문화국제연구중심 주임 시융제 교수 등이다. 8월부터 시작된 세부과제는 등총 교수가 이끄는 ‘홍산 옥기 공예’ 프로젝트와 류궈샹 교수가 이끄는 기원전 6000년까지 올라가는 ‘사전 취락 형태’ 프로젝트 등 2개 영역이다. 중화문명탐원공정이 세부과제에 들어간 것은 이미 기본적인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론적 토대란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서지방 요하문명(遼河文明) 지역이 전설시대부터 중화민족의 조상이라는 황제(黃帝)의 영역이었다는 점 ▦홍산문화를 주도한 실질적인 집단은 황제의 손자라는 전욱(顓頊)과 제곡(帝嚳) 두 집단이라는 점 ▦결국 이 일대에서 발원한 예ㆍ맥족ㆍ흉노족ㆍ조선족ㆍ여진족 등 모든 고대 민족들은 황제의 후예라는 점 등을 이론적으로 완비한 것이다. 이런 논리가 인정된다면 단군ㆍ웅녀ㆍ해모수ㆍ주몽 등 모든 우리의 선조들은 ‘황제의 후예’가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둬야 한다. 결국 세부과제 연구가 완성되면 요하문명은 중국문명의 시발점으로 정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동북방의 모든 고대 민족들은 황제의 후예가 되고 만다.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 학계에서는 반응이 없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만주 일대의 요하문명은 중원의 황화문명과는 이질적인 문명이며 이 지역에서 보이는 빗살무늬토기와 피라미드식 적석총, 비파형동검, 치(석성에서 돌출하여 쌓은 곳)를 갖춘 석성(石城) 등은 중원지역에서는 보이지 않고 ‘요서-요동-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북방문화계통이다. 이것은 요하문명의 주인공이 황하문명의 주인공과는 다른 사람들로 우리 민족의 선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학계에서는 더 늦기 전에 요하문명의 주인공들이 우리의 선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상고사ㆍ고대사는 모두 중국사에 포함되고 단군부터 모든 한국인들은 황제의 후예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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