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盧대통령의 시대 인식
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시급한 과제에 집중해서 헌법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노무현 대통령)
"올해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예년처럼 했다가는 어려울 것이다."(이건희 삼성 회장)
지난 1월9일. 국민들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꺼낸 화두를 동시에 접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개헌'을 들고 나왔고 재계의 선두 리더는 '위기 의식'으로 무장할 것을 주문했다. 대선 정국을 앞두고 대통령이 벌이는 고도의 정치 게임과 혼미한 상황에서 냉기가 서린 삼성 회장의 발언을 오버랩하면서 국민들은 어떤 감정을 품게 될까.
삼성과 청와대라는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출입한 기자에게 솔직히 현 상황은 혼란스럽다. 과연 우리 사회에 절실한 시대정신과 가치는 무엇일까. 대통령이 강조하듯 국가의 미래과제라는 개헌 어젠다인가, 재계 총수들이 울리고 있는 비상벨처럼 짙은 위기론에 휩싸여 있는 경제상황 타개인가.
노 대통령은 특별성명에서 "어떤 정략적인 의도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그의 진정성은 얼마나 흡입됐을까. 불행하게도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의 '순결한 의도'로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대통령의 말 폭탄에 지친 국민들에게는 개헌마저도 퇴색된 정치 대상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언론들은 일제히 레임덕 차단, 심지어 재집권 프로그램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진정성을 가치절하했다. 개헌에 공감하는 국민들조차도 60~70%는 '다음'으로 넘겨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개헌은 미래의 관념일 뿐, 일자리 먼저 찾아달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가 아닐까.
"국민의 평가를 포기했다"는 대통령이 불쑥 던진 개헌안. 지금 통치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개헌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명제가 아니다. '개헌이 지금 꼭 필요하다'고 자신 있게 설득할 수 있도록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에게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던진 것이라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말처럼 대통령은 정말 '나쁜 대통령'이다.
입력시간 : 2007/01/10 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