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9월 29일] 철없는 시의원들

미국에서는 ‘어색한 분위기를 좋은 농담으로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사람’을 ‘아이스 브레이커(ice breaker)’라고 부른다. 능수능란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아이스 브레이커들은 대개 사람들에게 호감을 심어주기 때문에 ‘인기’를 중요시하는 연예인이나 정치ㆍ경제 인사들은 이 ‘얼음 깨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때와 장소ㆍ분위기를 가리지 않으면 얼음을 깨기는커녕 스스로의 인격과 품위가 깨지는 법. 최근 모 드라마 제작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인기 개그맨이 진땀을 뺀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분위기를 띄우겠다’며 폭행사건으로 이혼한 동료배우의 전 부인을 폄하하는 농담을 했다가 네티즌들에게 숱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가관이었던 것은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광만)의 심리로 열린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섰던 시의원들이었다. 김귀환 의장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서울시 의원들 중 일부는 오후 공판을 기다리며 법정 앞에서 어이없는 농담을 일삼았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많으면 (법정에) 의자를 좀 갖다 놓지…. 시 예산 좀 지원해줄까" "100만원 받아놓고 (재판 받으러 오느라) 택시비쓰고 식사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재판 끝나고 나서 소주나 한잔 하자”며 뒤풀이까지 제안했다. 이들의 행동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기사화됐고 휴정시간에 기사를 본 재판부는 다시 재판을 시작하며 부적절한 언행을 꾸짖기도 했었다. 시의원들은 이날 자신들끼리 철없는 농담 덕에 법정의 경직된 분위기를 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시의회 의원’들의 후안무치에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날 그들이 깨뜨린 것은 분명 ‘어색한 분위기’가 아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였다. 떳떳하지 못한 일로 재판을 받으러온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값싼 농담이 아닌 반성의 침묵이 아니었을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